제주에 겨우 일 년 넘게 살았는데 이제 조금 살았나 본데 하고 느끼는 것이 예전에는 돌담만 보여도 설레고 제주스럽다며 좋아했는데 아주 조금씩 감흥이 떨어지고 있다. 작년에 이맘때엔 이미 귤 따러 여기저기 들리기도 하고 이곳저곳 찾아다닐 장소도 많았는데, 어느 정도 다녀왔더니 이제는 조금 시들해졌다. 게다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제주산 당근, 양파, 브로콜리, 딸기만 봐도 환장하며 살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천혜향을 사도 한라봉을 봐도 늘 거기에 있겠거니 싶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제주.
그래서 그런지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실은 이 마음의 발단은 오늘 우연히 어떤 블로그에 아이와 둘이 런던 여행을 예약했다는 글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행기 예약부터 호텔예약 그리고 갈 여행지까지 막힘없이 정하고 있는 그분의 글을 보자니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들었다.
그렇게 여행을 가볼까 생각하고, 어디를 갈까 이곳저곳 보다가 역시 유럽인가 싶기도 하고, 역시 추우니까 동남아에 가고 싶기도 하고 과연 어디 가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제주에서 멀리 여행을 가려면 비행기를 한번 타고 서울로 갔다가 또 공항을 이동하여 다시 비행기를 타야만 다른 나라에 도착할 수 있다. 요즘의 나는 비행기를 한번 타는 것도 싫은데 여행 가려고 왕복 4번이나 타야 할 생각을 한다는 생각을 하니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났다.
예전의 나는 여행을 너무도 좋아해서 가보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인데, 요즘의 나는 비행기 타는 것조차 별로 내키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에 비행기를 너무 오랫동안 타지 않아 그럴까? 심지어는 제주-서울 오가는 비행기도 별로 타고 싶지 않다. 내가 서울에 안 가는 이유 중에는 더 이상 흔들리는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3순위로 꼽힌다.
그래서 여행을 가고 싶긴 한데 순간 이동으로 딱 도착하면 좋겠다. 이러다가 더 나이 들면 정말 손도 까딱이고 싶지 않은 것 아닌가 모르겠다. 역시 여행도 젊을 때 다녀야 한다니까라는 생각이 벌써 들고 있다.
비행기를 타기 싫다면 제주에서 여행 떠나는 방법을 찾아봐야 했다. 일상을 여행처럼 이라는 문구를 실천해봐야 할 때가 왔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제주이지만 그래도 곳곳에 아직 가보지 않은 여행지가 남아있었다.
며칠 전 제주에 여행온 친구에게 산방산에 유채꽃이 피었으니 다녀오라는 얘길 들었다. 제주에 사는 나보다 여행온 친구들이 더 빨리 만나는 꽃이라니! 제주에 유채꽃이 핀 것을 보니 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다시 만날 따뜻하고 아름다운 제주의 봄이 벌써 기대된다.
1. 제주 봄꽃여행지
작년 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벚꽃을 만났다.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벚꽃에 파묻혀 진심으로 행복했다. 제주에 이렇게 벚꽃이 많은지 전혀 몰랐다. 제주에 살며 만나는 벚꽃은 낭만 그 자체였다. 제주의 겨울은 동백과 함께였고 봄이 오는 소리를 유채꽃을 보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봄이 되자마자 만난 벚꽃은 정말 황홀했다.
제주도의 봄을 알리는 풍경은 단연 노란 유채꽃과 하얀 벚꽃이다. 특히 산방산의 유채꽃이 유명하다는데 그 근처의 유채꽃은 지나가다 보았지만 산방산과 유채꽃이 한눈에 담긴 있는 그 장면을 꼭 만나고 싶다.
출처 : VISIT JEJU
그리고 가장 유명한 봄꽃여행지로는 유채꽃과 벚꽃이 함께 핀다는 곳이 있다. 바로 녹산로라는 곳이라는데 조선시대 최고의 목마장이던 녹산장과 갑마장을 관통하는 길로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서진 승마장에서 정석항공관을 지나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까지 이어진 10km의 도로라고 한다. 사진으로 만나본 유채꽃과 벚꽃이 어우러지는 조화가 가히 환상적이었다.
출처 : VISIT JEJU
게다가 서귀포에서 유채꽃이 피면 열리는 재밌는 일정이 있었다. 바로 서귀포 유채꽃 국제 걷기 대회이다! 매년 3월이면 열리는 걷기 대회 행사라던데 작년에는 알지도 못했던 행사이다. 이번에 제주에서 여행 갈 곳을 찾아보며 새롭게 알게 된 행사이다. 유채꽃 걷기 대회는 시간제한 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개최시기는 매년 3월 마지막 주 금, 토, 일로 고정된다고 한다. 올해는 나도 꼭 한번 참여해 봐야겠다. 노란 유채꽃 사이를 걸을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2. 오름과 올레길
제주에 일 년 넘게 살면서 내가 겨우 가본 오름이라고는 금오름, 새별오름, 백약이 오름, 아부오름, 검은 오름, 거친 오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제주에는 크고 작은 오름이 360여 개나 된다고 한다. 그중에 겨우 가본 곳이 7군데 밖에 되지 않는다니 너무했다. 일 년 동안 뭐 했지? 사실 마음은 이미 오름 정상인데 여름엔 더워서 겨울엔 춥다는 핑계로 오름에 오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수많은 오름 중에 제일가고 싶은 곳은 용눈이 오름과 거문 오름이다. 용눈이오름은 2021년 2월부터 2년 동안 자연휴식기를 가졌었다. 원래는 올해 2월 1일 휴식기에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조금 더 연장되었다고 한다. 하루빨리 용눈이 오름에 올라갈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거문 오름은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가기 전에 꼭 예약하고 가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제주에 와서 제일 처음 갔던 오름은 새별오름이었다. 평화로를 가로지르다 보면 보이는 새별오름은 늘 당당함 그 자체이다. 그런데 올해 오랜만에 들불축제가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그동안 코로나 시기라 쉬었던 들불축제는 작년에도 국내 사정에 의해 개최되지 못했는데 올해 열린다고 하니 꼭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3. 미술관
여전히 예술의 세계는 어렵지만 미술관에 다니며 다양한 작품을 자주 접하다 보면, 나의 수준과는 별개로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동안 제주의 미술관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제주현대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김창열미술관, 유동룡미술관, 포도뮤지엄, 아라리오 뮤지엄, 산지천갤러리, 이중섭 미술관 기담 미술관, 왈종미술관, 본태 뮤지엄 등을 가보았다. 특히 지난여름 다녀온 홀로 다녀온 유민미술관은 정말 좋았다. 이 정도면 제주에 있는 미술관 및 뮤지엄에 거의 다녀온 것 아닌가 싶은데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남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김영갑 갤러리, 수풍석 뮤지엄, 김택화 미술관등이다. 특히 김영갑 두모악 갤러리는 우리 집과 거리가 멀어서 쉽게 마음먹지 않으면 갈 수가 없는 곳이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미술관은 제주의 바람과 오름·들판·바다 등 제주의 평범한 경관을 사진 예술로 승화시킨 김영갑을 추모하고, 사진 전시를 통해 제주의 정체성을 일깨우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을 보니 더욱 기대되고 가고 싶어졌다.
특히 이번 겨울 유동룡 미술관에 다녀온 후로는 그가 만든 수풍석 뮤지엄에 하루빨리 가보고 싶은데, 그곳은 매일 정해진 인원, 시간으로 예약을 받는 데다가 그 시간이 나와 맞지 않아 곤란하다. 그래도 올해 안으로 꼭 가보는 것이 목표이다. 또 김택화 미술관은 제주 여행지를 찾다가 발견한 곳인데 제주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라고 한다. 제주의 향수를 그리는 분이라고 하니 더욱 궁금해지는 곳이다.
제주와 미술관은 왠지 너무 잘 어울린다. 봄이 제주와 잘 어울리듯이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제주여행을 검색해 보니 여전히 제주에서 내가 가야 할 곳은 넘치고 넘쳤다.
오랜만에 제주에서 여행할 곳을 찾다 보니 정말 설레었다. 마치 다시 제주로 떠날 여행을 계획하는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봄은 오고 있다. 제주에 살날이 영원한 것은 아니니 이곳에서 충분히 즐겨야겠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늘 가까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