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낭만

집에서 키운 한라봉

한라봉을 수확하다

by Blair

평소에 귤을 그렇게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겨울에는 집에 항상 귤이 박스채로 차고 넘쳤으니까. 그렇게 귤이 겨울마다 먹어대면 어느 순간 귤이 맛있는지, 귀중한지도 모르게 된다. 되려 여름날 먹던 한 봉지의 값비싼 귤이 더 맛있었다. 게다가 귤을 먹을 때면 손톱을 쑥 넣어 흠집을 내고 귤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그러면 손톱이 노랗게 물들고, 때론 손톱아래 귤내피가 끼게 되어 불편했다. 암튼 이런저런 이유로 귤은 선호하는 과일이 아니었다. 새콤달콤 맛있다는 마음보다 번거롭다는 기분이 더 많이 들었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제주 와서 달라졌다. 제주에 오면 귤을 공짜로 먹는지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지인이 없는 우리는 올해도 귤을 열심히 사다 먹었다. 종종 앞집에서 귤을 한가득 주시긴 했지만 귤국에 사는 사람들답지 않게 먹어치우는 속도가 엄청났다. 거실 한가운데 쌓아 올린 귤탑이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동나기 일쑤였다. 아이도 저녁을 먹은 후 늘 귤을 찾았다. 귤이 떨어질세라 사다 날랐고 올 겨울은 그래서 비타민c를 충분히, 아니 넘치도록 섭취했다. 내 생에 귤을 이렇게 열심히 먹어보긴 처음이었다.



여전히 제주를 잘 모르는 까닭에 제주도에서도 귤을 마트에서 사다 먹었다. 그러나 한라봉, 레드향, 황금향, 천혜향 등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이 훨씬 저렴했다. 제주의 수많은 귤 농장 중에 알게 된 한 농장에서는 새로운 귤을 수확할 때마다 특가상품을 내놓았고 나는 그때마다 황금향, 레드향, 한라봉 등을 사 먹었다. 확실히 방금 수확한 귤을 바로 배송해 줘서 그런지 정말 싱싱하고 달콤했다. 거기에 가정용 패키지로 구매하면 불필요한 포장 없이 박스에 가득 담겨오는데 양이 많아 가성비가 좋았다. 무엇보다 제주도내 배송이라 보통 이틀 걸리는 택배가 하루 만에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터넷으로 귤을 주문해 먹어보기도 올해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겨울 내내 계속 인터넷으로 주문해 먹었는데 마지막 주문했던 귤이 시기가 늦었던 탓인지... 상한 귤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요즘은 제주도내 마트에도 싱싱한 한라봉과 천혜향이 많이 판매되고 있길래 마트에서 사다 먹기 시작했다. 그중에 요즘 천혜향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한 봉지에 6~7개 정도 들어있는데 금방 먹게 된다. 천혜향이 이렇게 싱싱하고 맛있었다고? 그래서 이번엔 더 많이 들어있고, 조금 더 비싼 것을 사 와봤다. 이번에도 성공적이었다. 단번에 알아챘다. 아! 지금이 천혜향을 먹는 때구나!








우리 집에는 세 그루의 귤나무가 있다. 하나는 한라봉, 하나는 보통 귤, 하나는 하귤이다.



작년에는 설즈음 부모님이 오셔서 우리가 따지 않고 내버려 둔 한라봉과 귤을 따가셨다. 우리도 그중에 남겨진 귤을 몇 개 따봤는데 기다리고 기다려봐도 단단한 귤이 말랑해지지 않거나, 껍질이 까지지 않거나, 시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하귤은 6월 즈음 수확했는데, 어느 날 집에 들어와 주차를 하고 내리는데 앞집 아저씨가 달려와 말씀해 주셨다. "이거 빨리 따지 않으면 이제 먹지도 못해" 그러시며 하나를 따더니 이렇게 먹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가셨다. 우린 그날 하귤을 모두 수확했다. 한 개 두 개 까서 먹어보니 모두 잘 익어 있었다. 나에게 커다란 사이즈의 하귤은 마치 자몽 같은 느낌이었다. 껍질은 먹지 않고 안에 과육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는 냉장고에 잘 넣어두고 두고두고 먹을 수 있었다. 특히 하귤 덕분에 여름까지 주렁주렁 열린 귤을 볼 수 있었다




올해는 여태 귤을 따지 않았다. 작년에 경험해 보니 수확해도 먹지 못하는 귤인 듯싶었다. 정원에 달린 귤은 관상용이구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봄이 찾아와 매화가 피는 것을 보니, 모과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봄이 오고 있는데 귤을 그냥 뒀다가는 귤나무에 새싹이 돋지 못할 것만 같아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서 오늘 한라봉을 수확하였다. 정원 귀퉁이에 있는 나무라 보통 때는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작년보다 한라봉이 두 배 넘게, 열매가 정말 많이 열려있었다. 그러나 제때 수확하지 못하고 나무에 오래 달려있다 보니 어떤 것들은 이미 말라버린 것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굉장히 작은 것도 때로는 크고 실한 것들도 고루 달려있었다. 특히 그중 몇 개는 보기에 꽤 좋아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우리집 정원에서 수확한 한라봉





가위를 들고 하나씩 따기 시작했다. 따다 보니 개수가 꽤 많았다. 크고 좋아 보이는 것들은 하나씩 따서 바닥에 잘 놓고, 작고 마른 것들은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것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얘네들을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했다. 그래서 하나하나 만져보다가 어떤 한라봉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 서둘러 한라봉의 껍질을 까보았다. 생각보다 쉽게 껍질이 까졌다. 껍질을 까서 먹어보기 전까지는 '분명 아무 맛도 없을 거야' 하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입 먹어보았을 때 반전이 일어났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작년에는 분명 아무 맛이 없었는데 올해는 그것보다 5배 정도 더 달고 맛있었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물론 안에 씨가 이미 꽤 많이 생겨있었다. 그러나 한라봉의 껍질은 까기가 수월했으며, 신맛도 없이 달기만 했다. 작년보다 늦장 부려 수확한 결과 먹을 수 있는 한라봉을 얻게 되었다. 물론 오늘 수확한 스무 개 남짓한 한라봉에서 몇 개나 이런 맛이 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올해는 그중에 먹을 수 있는 한라봉이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당장 내일은 그 옆의 귤나무를 수확해야겠다. 과연 그것도 맛이 있을지 어떨지 굉장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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