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떠났다는 글을 쓰려고 했다. 작년 6월에 우리 집에 잠시 살던 네 마리의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그 후 시간이 조금 지나고 결국 그중에 한 마리만 우리 집에 살게 되었다. 작고 작은 꼬꼬마 시절을, 가을도 겨울도 함께 보냈다. 추웠던 겨울에는 집 앞에 상자를 마련해 줬지만 왔다 갔다 몇 번 하더니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튼 겨울도 잘 견뎌주었다. 그렇게 몇 개월간을 우리 집을 오가며 살던 아기 고양이는 봄이 오는 기미가 들자마자 홀연히 떠나버렸다. 매번 맛있게 먹던 사료가 반도 더 남은 상태였다. 어느 날부터 한참을 보이지 않자 생각했다. '너 먹이려고 산 사료인데 이거라도 다 먹고 떠나지 그랬어.'
작년 6월말, 네 마리 아기고양이의 등장
우리는 우리 집에 남게 된 한 마리의 고양이 이름을 지어주었었다. 아이는 고양이를 '슈크림'이라고 부르고 싶어 했다. 생김새와는 전혀 다른 이름이었지만 부르다 보니 제법 잘 어울리는 듯했다. 슈크림이 얼마나 기특하냐면 밥을 먹을 때 종종 엄마고양이가 나타나 슈크림의 밥을 빼앗아 먹곤 했는데, 배가 고파도 그때마다 뒤로 물러서 엄마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봄이 오자마자 홀연히 사라져 버릴 줄은 몰랐다. 벌써 보름이 훌쩍 넘도록 한참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길고양이이긴 하니, 이제 겨울도 갔으니 밖에 더 맛있는 것이 많을 수도 있겠구나 혹은 우리 말고 맛있는 밥을 주는 주인을 찾았을 수도 있겠다 짐작했다. 그러면 작별 인사라도 하고 갔으려면 좋았으련만, 작년에 떠난 고양이는 우리 집 앞에 새도 잡아놓고 작별 표시라도 했는데... 하며 섭섭해했다.
한참을 아이와 남편에게 "이제 슈크림이 안 오려나 봐" 말하며 씁쓸해했다. 그렇게 고양이를 기다리던 어느 날 남편이 집에 오더니 "나 슈크림을 닮은 고양이를 본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남편은 저녁을 먹은 후엔 꼭 분리수거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보았다고 한다. 나도 얼마 전 운전을 하며 지나가다 그곳에서 슈크림을 닮은 녀석을 보긴 했다. 그런데 그 어미가 4마리를 낳았으니 다른 고양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었다.
11월, 5~6개월쯤 추정 '슈크림' 당돌 그 자체
그리고 며칠 후... 거실 창문 사이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슈크림의 뒷모습을 봤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알아봤다. 그렇게 재빠르게 뛰어가는 것은 바로 우리 고양이 슈크림이라는 것을!!!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서 "슈크림~~" 하고 큰 목소리로 불렀다. 그리고 밥을 줄 때 소리를 냈다. 밥을 줄 때는 늘 "우쭈쭈쭈" 하면서 소리를 줬기 때문에 슈크림은 분명히 그 소리를 알아들을 것이다. 우리는 몇 개월의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니, 게다가 제주의 겨울도 함께 난 사이니까. 서둘러 지나가려던 고양이가 담장에 올라가 멈춰 섰다. 그리고 얼굴을 돌리지 않은 채 가만히 소리를 듣고 있었다(도도 그 자체). 그러나 내가 "우쭈쭈쭈" 하면 "야옹" 하면서 대답했다. 슈크림이 도망가기 전에 서둘러 집안에 들어가 사료를 꺼내왔다. 다음에 오면 주려고 밀봉해 놓은 사료를 한 컵 푸는데 마음이 어찌나 급한지, 바닥여기저기에 흘려버렸다. 그러나 빨리 슈크림에게 가야 했다. 다시 밖으로 나가 "우쭈쭈" 소리를 내며 고양이에게 사료를 흔들며 말했다. "슈크림 이리 와~ 밥 먹고 가~" 하면서 고양이 밥그릇에 소복이 담아주었다.
슈크림은 못 이기는 척 밥그릇 앞으로 왔다(그럴 줄 알았다). 그러더니 밥그릇에 얼굴을 박고 허겁지겁 먹는 게 아닌가! 이전과 다르게 조금 야윈듯한 모습도 느껴졌다. 그런데 분명하게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 있었다. 사료를 먹으며 여기저기 고개를 들고 살피고, 먹고 또 먹다가 고개를 들고 살피며 먹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슈크림에게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집의 주인은 다른 고양이 일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슈크림 또 밥 먹으러와~~" 하고 보내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는 고양이 다섯 마리를 만날 수 있다. 엄마고양이, 아기고양이(슈크림), 꼬리 잘린 누렁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덜룩 고양이가 매일 같이 지나다닌다. 종일 의자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매일 같이 보이는 고양이들이다. 그래서 밤마다 고양이 밥그릇에 이런저런 음식을 두기도 한다. 누구든지 지나가다 먹고 가라고, 그러면 아침이 되면 그 음식은 분명히 사라져 있곤 한다. 그러나 다섯 고양이중에 누가 먹은 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아까 낮에 슈크림이 그렇게 경계하며 밥을 먹는 느낌은 마치 '이곳은 다른 고양이 영역이니 난 이제 마음대로 올 수 없어요'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또 재빠르게 뛰어가는 슈크림의 모습을 보았다. 내 눈이 어찌나 밝은지 이제 슈크림의 그림자도 알아볼 듯하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 (아마도 그 녀석은 내가 창문 여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슈크림 밥 먹고 가~ 요즘은 왜 이렇게 안 와?" 했더니 이번에도 가던 길을 멈춰 섰다.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사료가 담긴 병을 들고 나와 흔들었다. 그리고 또 소리를 내며 불렀다. 역시나 이번에도 밥그릇 앞으로 다가온다.
그 이후는 가끔 다시 찾아왔다. 가끔이라도 슈크림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동안 못 먹었을 테니까 사료와 더불어 맛있는 것들까지 꺼내 특식도 주고 있다. 엊그제는 슈크림이 밥 먹을 때 앞에 의자를 갖고 와서 앉아있었다. 금세 다 먹은 슈크림은 내 주위를 맴돌았다. 딱 '밥 더 주세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다리 사이를 오고 가며 몸을 비비댔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의 골골송을...!
현재 12개월 추정, 거대해진 슈크림 (아빠를 쏙 닮았다)
엊그제 제주에 오신 부모님이 생선을 사주고 가셨다. 고등어를 손질해서 차곡차곡 냉동실에 넣어주셨는데 생선 머리가 제거되어 있었다. 순간 고양이 생각이 났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면 안 된다는 속담도 있는데 과연 이것을 먹을 수 있을까?
슈크림이 오길 기다렸다. 아직 아기인데 괜찮을까? 슈크림을 기다리면서도 엄마 고양이가 더 잘 먹을 것 같긴 한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슈크림은 먹을 복이 좀 없는데 내가 맛있는 것이 있어서 기다리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반면에 엄마 고양이는 먹을 복이 넘치는지 우리 집에 맛있는 것이 있을 때면 기가 막히게 나타나 얻어먹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슈크림이 왔다. 생선 머리를 하나 들고 가져다주었다. 생선을 열심히 먹기 시작한다. 손도 없는데 정말 오랫동안 먹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다 먹어버렸다. 바닥에 생선의 잔해들이 남아있어 청소를 해야 했지만 슈크림이 이제 많이 컸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재밌게도 생선의 맛을 본 슈크림이 이제 다시 떠나지 않고 집 근처만 맴돈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료가 맛이 없었던 건가?
고양이에게는 내가 밖으로 나가면 곧 밥을 준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게다가 하루 종일 데크에 앉아 밥을 기다리는 고양이를 보고 있다 보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 가까이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내가 밖으로 나가면 '야옹야옹' 우는 고양이를 보면 짠하기도 하고, 불편할 때도 있다.
게다가 봄이 되어 정원에 풀을 뽑으려고 보니 여기저기 똥이 많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집을 지키며 정원을 살폈는데, 그래서 고양이가 배변을 하는 것은 보지도 못했는데 언제 그랬을까? 정원이 완전 똥밭이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면 허겁지겁 먹으며 내는 소리가 귀엽기도, 불쌍하기도 하다. 특히 아기 때부터 본 고양이라 그런지 왠지 더 짠하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슈크림을 쓰다듬어줄 때 내는 골골송에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고양이에게 내 마음속에 있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또다시 걱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내가 이곳을 떠나버리면 넌 어떻게 살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떠나기 전에 네가 먼저 떠나버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참을 안 보이니 보고 싶고 기다려지는 것을 보니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여기에 사는 동안만큼은 얼굴 보고 지냈으면 좋겠다. 아줌마가 이번엔 맛있는 통조림 가득 사다 줄게, 응?
*** 댓글이 달려서 말씀드리지만 그 이후로는 전용 고양이 전용 통조림으로 제공중이니 노여워하지 말아주세요 !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