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온 이후로 쌀을 한 번도 사 먹은 적이 없다. 어떻게 쌀이 떨어질 때가 된 걸 아시는지, 귀신같이 쌀 한 가마니가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매번 외할머니께서 쌀을 보내주셨다. 제주에 와서 여러 가지 이유로 외식을줄이고 집밥을 많이 해 먹게 되었는데, 할머니 덕분에 쌀밥을 얼마나 풍족하게 먹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은 매번 쌀을 보내주시는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이제 더 이상 쌀 보내주지 마세요." 말씀드렸더니 "제주 사는 동안이라도 보내줄 테니 그냥 먹어~" 하시는 것이었다. 할머니를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할머니께서는 아무래도 제주에는 쌀농사를 짓지 않는 줄 아시는 것 같다. '할머니 제주에도 마트에 쌀이 팔아요!'
아무튼 할머니가 쌀을 보내주실 때마다 감사인사 전화를 드렸는데 그때마다 "할머니 빨리 제주 놀러 오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거기가 어디라고,그렇게 멀리 어떻게가~ 말이라도 고마워"라고 말씀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의 연세는 올해 85세이다. 그래서 먼 거리를 여행하는 것이 무리이긴 하다. 그리고 얼마 전 다리를 수술하셨다. 그동안 다리가 너무 아팠는데 결국 이번에 수술을 하셨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아 이전보다 아프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다. 수술한 후에 전화를 드리니 "하루를 살더라도 아프지 않고 살고 싶어. 그래서 수술했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할머니를 내가 제주에 있을 때 꼭 모시고 싶었다. 그래서 틈틈이 기회를 엿보았다.
이번 5월 연휴에는 시댁과 친정에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제주에 올 때는 엄마와 할머니가 함께 동행하는 것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처음에 할머니는 내가 거길 어떻게 가냐며 손사래 치셨지만 막상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니 별말씀 없으셨다.
대망의 그날이 다가왔다. 할머니를 모시고 친정 집으로 왔고 그 후 공항으로 갔다. 여기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는 터라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비행기 타러 이동할 때였다. 지방 공항이라 별로 크지 않는데도 걸어야 하는 범위가 꽤 넓었다. 젊고 튼튼한 우리에겐 별것 아닐 테지만, 거동이 자유롭지 않으신 할머니께는 한참을 걷고 또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제주 공항에 내리기만 해도 차로 이동할 수 있을 텐데, 그동안 한 번도 크게 느껴지지 않던 공항 내에서의 거리가 천리길, 만리길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할머니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걸으셨다. 그렇게 제주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제주에서 오기 전부터, 도착하셔서도 내내 고사리 얘기만 하셨다. 고사리가 많이 난다는 제주에 오셨으니 얼마나 많은 기대를 갖고 오셨는지, 그것들을 다시 만날 꿈에 부풀어하셨다. 이유인즉슨 이전에 제주에 여행 오셨을 때 숙소 근처 숲에 들어갔는데 고사리가 얼마나 많았던지, 엄마와 이모와 할머니는 그것을 꺾어서 가져가셨다고 했다. 그 후로도 고사리철이 되면 그 많던 고사리를 놓고 왔던 아쉬움을 토로하시곤 했다. 그동안 나는 그 이야기를 최소 10번은 들어봤다. 고사리 얘기가 나오면 늘 나오는 레퍼토리이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이전에 몇 번 다녀오신 적이 있었던 터라) 신속하게 아침을 드시고는 뒷산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가셨다. 할머니는 뒷산에 함께 가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뒷산을 가려면 조금 걸어서 가야 하는데 그곳도 할머니에겐 너무 먼 길이고, 특히 엄마가 고사리를 따러 가는 곳은 가는 곳은 산속에서도 깊숙한 곳이라 할머니가 함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엄마가 고사리를 꺾으러 간 시간, 할머니는 어떻게 하면 저 낮은 뒷산에 올라갈 수 있을까 동네를 조금씩 걸으며 연구하셨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 집 근처는 모두 집들이 산을 가로막고 있어서 뒷산에 올라갈 방법이 없었다(돌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집에서 기다리는 할머니 생각이 났을까? 엄마는 두 시간 정도 후에 (이전보다 훨씬 빨리)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 할머니는 엄마가 따온 고사리를 보며 눈이 커지며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아니 그렇게 짧게 있었는데, 이렇게나 많이 땄어?" 그 후 할머니와 엄마는 자리에 앉아 고사리를 다듬어 삶으셨다. 고사리도 많이따야 하지만 그것보다 쇠지 않게 바로 삶아 잘 말리는 것도 참 중요하다. 나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노동으로 느껴지는데 엄마와 할머니는 신나 보였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와 아빠, 엄마는 고사리가 그렇게나 좋을까?
할머니는 엄마가 꺾어온 고사리를 보며 고사리 천국인 뒷산을 너무도 궁금했다. 할머니는 제주의 바다나 맛있는 음식보다 그 고사리가 더 중요했다. 종일 고사리 얘기뿐이었다. 끊임없이 고사리를 얘기하는 할머니가 너무도 안타까웠던 나머지, 차를 끌고 뒷산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고사리가 피어있는 언덕 없는 들판을 찾아냈다. 두 분은 그곳에서 한참을 고사리를 꺾으셨다. 그렇게 첫날 할머니는 고사리 꺾는 맛을 조금 보셨다.
고사리 지옥 어게인
다음날에도 엄마는 아침을 드시자마자 고사리를 꺾으러 가셨다. 이번에도 할머니가 따라가고 싶어 하셨지만 힘드셔서 안된다며, 이따 전화를 할 테니 그때 할머니를 차로 모시고 뒷산으로 오라고 하셨다. "할머니 산에 가면 힘드시니 나랑 바다 앞에 차 마시러 가요"라고 여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조금 있다가 뒷산에 가봐야 한다고 단박에 거절하셨다. 아니! 제주에 오랜만에 오셨는데, 가볼 때가 얼마나 많은데, 계속 고사리 얘기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후로 할머니는 오매불망 뒷산에 간 엄마에게 전화가 오길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전화가 오지 않자 참다 참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말하셨다.
결국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차를 끌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할머니는 차를 타고 1분이면 도착하는 뒷산이 가까워오자 "여기에 고사리가 많을 것 같아, 여기에 있을 것 같아" 하면서 안절부절못하셨다.
분명 할머니는 거동하는 것도 몸도 불편하신데, 고사리를 꺾을 때만큼은 잠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다. 몸이 아픈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고사리만 보이니 말이다. 고사리는 85세 노인도 일으켰다.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5월의 고사리는 4월에 비해 그렇게 품질이나 양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년에는 할머니를 4월 내내 제주 집으로 모셔, 고사리를 꺾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릴 때 이후로 할머니와 이렇게 며칠을 한 집에서 지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특히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니 할머니를 뵈는 일은 더욱 줄어들었었다. 오랜만에 할머니와 한 집에서 지내며 할머니가 뭘 좋아하시는지, 무슨 음식을 잘 드시는지, 다른 가족들 이야기까지 한참을 이야기 나눠볼 수가 있었다. 내가 어릴 적 할머니는 호랑이 같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집에 오셨을 때 소파에 가만히 앉아 우리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바라보던 할머니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할머니와 함께 바다구경도 했다.
두고두고 제주도의 고사리가 생각나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가 간신히 제주에 다시 오셨는데 몸이 불편하셔서 잠깐씩 밖에 고사리를 꺾은 것을 너무도 아쉬워하셨다. 5년 아니 10년만 젊었어도 할머니는 제주 뒷산을 날아다니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라도 할머니가 두고두고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었던 것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내가 제주에 살길 잘했구나 싶어졌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할머니를 제주에 모셔오길 참 잘했다는 마음도 들었다.
할머니는 명언을 남기며 제주를 떠나셨다. "고사리가 아니었으면 난 제주에 오지도 않았다" 역시 제주 고사리는 몸이 불편한 85세 할머니를 제주까지 오는 열정을 부르는 엄청난 존재이다. 제주 고사리 덕분에 할머니에게 효도할 수 있는 날이 생겨서 고사리에게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