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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Feb 28. 2023

사람을 만나도 외롭긴 마찬가지.

오랜만에 우유를 데웠다. 그리고 설탕을 듬뿍 넣은 후 캡슐커피를 하나 꺼내 내렸다. 집에서는 거의  아메리카노나 믹스커피를 마시는데 오늘따라 라테가 만들어 먹고 싶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의 커피에서는 딱 그날의 맛이 났다. 그 커피 한 모금이 딱 그날의 그 순간으로 데려가 주었다.




결혼 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났다. 처음해 본 외국생활은 아니었는데 그곳에는 남편밖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조금 외로웠다. 처음엔 집을 꾸민다, 요리를 한다 정신이 없었지만 금방 익숙해지고 나니 새롭지 않은 잔잔한 일상에 조금씩 우울해졌다. 수년 전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외로웠냐면 카페에 갔을 때 그곳에한국말만 들리면 말걸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은 상상조차도 안 되는 상태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운영하던 블로그에 댓글이 달렸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고 반갑다는 글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블로그를 오가며 댓글을 주고받았다. 자기도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친구남편도 학생이었던 터라 비슷한 상황에 있었다. 운명처럼 나이도 같았다. 댓글만 주고받던 우리는 어느 날 오프라인 만남을 했고 그 이후로 친하게 지냈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오늘의 커피는 그 친구네 집에서 처음 갔던 날 마시던 딱 그날의 커피 맛이 났다. 같은 캡슐커피, 달달한 설탕의 맛... 그래서 순간 그녀가 생각났다.  



그곳에서의 첫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친구는 mbti가 극 E인 친구였다. 언제나 적극적이었다. 일도 구하고 랭귀지 스쿨도 다니고 처음 하는 운전이었는데도 멀리멀리 거침없이 움직였다. 게다가 성격도 좋았다. 그곳에 겨우 친구가 두세 명뿐인 나와 다르게 아는 사람도 점점 많아졌고 활동범위도 늘어났다. 아! 친구는 그곳에서 구매대행 일에도 손을 뻗었다.



나는 친구가 정말 좋았다. 우린 그곳에 사는 동안 자주 만나고 어울렸다. 그러다 친구가 먼저 아이를 가졌고 아이를 낳고 한국에 돌아갔고, 그러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고 다시 내가 한국에 가게 되며 우리의 우정은 조금씩 옅어져 갔다. 









그 시절은 그와의 추억으로 가득하다. 그 이후로도 한두 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봤는데 어느 시점부터 전혀 연락도 하고 있지 않다.  나는 이제 한국에, 그녀는 미국에 살고 있어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가 생긴 것 같다. 아마도 앞으로도 우린 연락을 주고받지 않지 않을까?  



사실 나에겐 이런 친구가 한 두 명이 아니다. 미국에서 지낼 때 알게 된 다른 친구들과도 이런 상태이다.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혹은 알고 지냈던 사람들 대부분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상태이다. 다들 지나가는 인연들이 이렇게 되지 나?



그런데 아마도 종종 생각나고, 그리운 이유는 그 시절 온 마음을 담아 대했던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를 분명 오래도록 알고 지내고 싶었고, 때다 연락을 유지해가고 싶었다. 때는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지 않은 인연의 끈을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짧게, 잠깐 만나는 사람들이 싫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잠깐 알고 지낼 사람들에게 신경 쓰고 연락하고 만나는 것조차 시간낭비, 감정낭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기억도 많다. 그때, 그 순간마다 나는 그들과 어울려 참 즐겁게 지냈다. 그런데 결국 지금 내 곁에 몇 남지 않은 친구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아니 되려 그렇게라도 남은 이 다행일지도...



그래도 그때는 자의로 친구들이 생다. 그러나 지금은 내 친구로 만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인연은 다들 아이의 친구 엄마들이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매년 새롭게 바뀌는 아이의 새 학기마다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된다.



물론 나는 제주와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싶었지만, 부모와 아이가 오로지 한라산 깊은 산속에 틀어박혀서만 지내는 것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사회활동은 없더라도 아이는 유치원과 학교를 유지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제는 아이친구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받았다. 지금 내 마음대로 이 관계를 피할 수는 없 것 같다. 그래서 무던한 척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괜히 마음을 주고 나중에 씁쓸해한 감정을 느낄 바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관계를 우선시한다. 때때로 마음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인연은 이제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고 싶다.








다행인 것은 제주에서는 외롭지 않다. 이제는 카페에서 하하 호호 떠드는 사람들을 봐도 부럽지 않다.

나는 차라리 기대하거나, 욕심내는 사람이기보다 그냥 혼자 외롭게 지내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외롭지만 괜찮다. 시절인연보다 나에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사진 : https://pin.it/6nv6d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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