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을 알아도 모르는 척

by Blair

따뜻한 계절이 되니 옷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또! 스멀스멀 올라온다. 얼마 전까지 이상하리만큼 무소유의 삶을 즐겼는데 왜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자꾸만 나를 쇼핑의 세계로 인도하는지 모르겠다. 이유야 당연히 계속 유튜브에서 봄 패션을 연이어 시청한 까닭이다.



덕분에 나는 올봄 청청패션이 유행인 것도 카고바지 유행이 다시 왔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y2k패션이 재유행하고 있다길래 아니 이런 것들이 왜 다시 유행인 걸까? 하는 생각을 하는 mz의 축에도 못 끼는 소리나 하고 있다. 게다가 입지도 못할 최신 유행의 패션은 거의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30n 아줌마가 입기엔 조금 무리라고나 할까? 그리고 내가 언제부터 유행을 좇았다고...



지난 몇 년을 돌아보건대 유행을 따라가는 운이 좀 없었던 것 같다. 유행을 좇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늘 심각하게 뒤처지는 식이랄까? 몇 년 전 스키니진 유행이 가고 스트레이트 진이 무난하던 시절, 큰맘 먹고 스트레이트 진을 세 개나 사게 되었다. 겨울에 한 개 사고 그해 열심히 입어 마음에 쏙 들어 버린 나머지, 그다음 봄에 사고, 또 샀다. 물론 진한 청바지, 연한 청바지, 블랙 바지... 누가 봐도 다른 색이라 언제든 입어도 좋을 듯 하지만 작년 한창 통이 확 넓어진 바지가 유행이었을 때는 이 바지를 입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고민했다.




유행은 매번 바뀐다. 그것이 패션계의 당연한 순리인 줄 알면서도, 그 흐름을 절대 타지 않겠다 다짐하면서도 막상 옷을 보러 가면 모두 그런 옷들만 팔고 있으니 나도 그쪽에 편승하기 일쑤이다. 저게 뭐야?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사지 않다가도, 유행하는 옷들을 계속 보다 보면 어느새 눈에 익어 예뻐 보이는 때가 온다. 그렇게 뒤늦게 빠져서 사다 보면 어느새 유행은 지나가버린 후다.




mz세대에게 핫한 miumiu 작년(왼), 올해(오) 패션쇼 모습 / 유행을 쫓기가 너무 어렵다.










내가 가진 쇼핑 습관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만약에 지금 베스트를 잘 입고 있다면 색이 다르거나 재질이 다른 베스트를 사고 싶어 진다던가, 또는 주름치마를 잘 입고 있으면 색이 다르거나 주름의 모양이나 길이가 다른 치마를 사고 싶어 한다. 그리고 검지에 실버링을 잘 끼고 있다면 그러면 이번엔 중지에 낄 골드링을 사볼까? 이런 식으로 쇼핑의 범주가 늘어나는 것이다.



재밌게도 아예 새롭게 다른 쇼핑 카테고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컬러가 변경되거나 아니면 계절에 따라 재질만 바뀌는 수순인 것 같다. 그러니까 지난번 진한 청바지를 잘 입어서 연한 청바지를 사게 되고 검정 바지까지 사게 된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도 추가로 두 개나 더 샀으니 조금 오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때도 최소한의 옷만 살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자주 실패했고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사고 그만 '을 외치기 일쑤였던 것 같다.



그래도 요즘 쇼핑 할 때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같은 옷을 컬러별로 사지 않는 것이다. 이전에 마음에 드는 코트를 두 개나 사고 후회했기 때문이다. 그때 마음에 든 코트의 색이 흰색과 검은색이 있어서 그것 중에 어떤 것을 사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었다. 고민을 하고 또 하는데도 정말 뭘 사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었다. 그래서 점원에게 물어봤더니 점원은 가격도 저렴한데 두 개 다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나를 설득했다. 그 설득에 마지못해 넘어간 나는 코트 두 벌을 구매했는데 그 후로는 너무 뻔한 스토리다. 결국 두 벌 다 잘 입지 않고 버렸다는 이야기. 그 이후로 같은 디자인의 다른 색은 절대 사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 더!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서 같은 옷을 사서 쟁여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옷은 계속 나오고 있고, 마음에 들 옷은 앞으로도 계속 생긴다. 이것은 나의 수많은 쇼핑 경험이 만들어준 교훈이다. 때로는 교훈을 얻고 실천하는 것도 있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말 부모님과 외출하려는데 또 입을 옷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 옷장엔 옷이 한가득이다. 옷장 앞에 서서 한참을 고르고 있던 내 모습을 보더니 엄마가 말했다. "그러니까 옷을 사면 안 돼! 그냥 있는 것으로 계속, 열심히 입어야 해! 그래야 옷이 없다는 생각을 안 해" 갑자기 던져진 말에 조금 뜬금없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예전엔 절대 이해 못 하던 말이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될 때도 있다. 무엇보다 극강의 미니멀리스트 선배인 엄마가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시 쇼핑이 하고 싶어지는 날이 왔으니 오늘 다시 가진 옷들을 모두 꺼내봐야겠다.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스타일을 지키기 위해, 상하의 조합을 해보며 올해 봄과 여름도 잘 지나가봐야겠다. 그래도 따뜻한 계절이 와서 정 옷이 가벼워지니 정말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올해도 화장품 값 제로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