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산다는 것은 육지에서 멀어진다는 말이다. 겨우 한 시간 정도만 비행기를 타면 되는데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것도, 제주와 친정을 오가는 것도 쉽지 않다. 서울을 떠나올 때는 한 달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고 오고 가겠지 막연히 생각하고 왔는데 정작 겨우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육지로 나가지 않게 된다.
일년살이 할 때는괜찮았다. 그러나 일 년 정도 지나니 육지에 한번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도 육지 친구들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다 작년 9월 명절에 서울에 다녀왔다. 그리고 11월 말 꼭 참여해야 하는 친척 결혼식이 있어 또 한 번을 갔다왔다. 서울에 간 김에 친정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 4개월이 흘렀다. 요즘은 아... 육지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곤 한다.
그곳에 간다고 딱히 해야 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별 이유는 없는데 또 가고 싶어 지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육지에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외국에 사는 것도 아닌데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뵙지 못한다 생각하니 왠지 서글퍼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서울에 가지 않은 이유는 엄마가 주기적으로 오고 가서였다. 그런데 그렇게 자주 오시던 엄마도 제주의 겨울이 되자 발길이 끊겼다. 얼마 전인가 저녁엔 자려고 누우니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났다. 그래서 더 육지에 가고 싶어졌다.
서울에 살 때면 한 달에 한 번씩은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서 일주일씩 쉬다 왔다. 그리고 여름, 겨울 방학에는 더 오랫동안 지내다 왔다. 물론 그때는 미취학 아동이라 가능한 이야기였다. 육아에 힘들고 피곤에 찌들어 있었어도 아빠엄마 옆에서 먹고 자고 하다 보면 다시 기운을 충전되어 오곤 했다.
결혼을 하고 신혼 시절에는 학업을 이유로 한국에서 반년, 미국에 반년동안 지낼 때가 있었다. 그때는 반년은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반년 동안은 미국에서 지낼 때도 있었다. 그러다 학업을 마치고 미국으로 들어갔을 때 바로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일 년 동안 부모님을 만날 수 없었다. 미국에서는 태교여행을 한국으로 가기도 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는 것이 무서워서 꾹 참았다. 그때 아이를 갖고배가 점점 불러오길래 그 모습이 어찌나 신기한지, 배가 부른 나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결국 아기 낳기 전날 도착하신 친정엄마 겨우 보여줄 수 있었다.
나의 가족을 이루고,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나의 어린 시절이떠오르곤 한다. 저녁을 짓다 보면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고, 토요일 오후, 학교 앞에서 하교하는 우리를 기다리던 아빠도 생각나고, 오빠랑 싸우다가 혼나서 손 들고 있던 우리도 생각나고, 텐트를 가지고 캠핑을 갔던 주말도 생각나고, 바다에 가서 잡던 조개도 생각나고, 피아노가 집에 처음 생기던 날도 생각나고, 다 같이 치킨을 먹으며 대한민국을 응원하던 날도 생각이 난다. 그런 날엔 부모님도 그리고 오빠와 새언니 조카들도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어 진다.
나의 가족이 생긴 이후로는 부모님과 형제는 서울-제주 거리만큼 멀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물리적인 거리조차 간격이 있다. 그만큼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의 가족에게 먼저 신경 쓰는 일이 많아지면서 특히 아이가 점점 자라며 필요한 것들이, 해야 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부모님과 형제는 점점 잊히는 상황이 된다. 일부러 그렇게 의도하지 않아도 상황은 그렇게 흘러갔다.
얼마 전 아버지가 수술을 하시러 서울에 가셨다. 큰 수술이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3박 4일은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제주에 사는 나는 멀리 있다는 핑계로는 이럴 때 병문안도 쉽게 못 가보는구나 하고 슬퍼했다. 지난번 부모님께서 코로나에 걸리셨을 때도 며칠간 드실 음식도 가져다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사는 것도 서러운데 때마다 아쉬운 상황이 오곤 한다. 그래도 서울에 살 때는 엄마가 입원하셨을 때 내가 며칠간 보호자 역할을 할 때도 있었는데... 이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수술을 잘 끝나셨고, 회복도 빠르셨다. 여러 번 전화로 안부를 묻는 딸이 걱정되었는지 시간을 내어 제주를 방문한다고 하셨다. 평소에 늘 바쁘신 아버지를 보는 것은 비수기에나 가능한 일인데 따뜻한 봄이 된 제주에서 부모님을 뵐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언제나 그리운 가족을 떠올려본다. 양가 부모님들, 형제, 그리고 남편과 자식. 위, 아래, 옆 모두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다 함께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이 계절 그들과 함께 제주에서 일주일만 먹고 자고 하면 참 좋겠다.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