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아마도 월급날일테다. 현재의 나는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 없으니, 매번 은행의 앱에 접속해 보아도 그 숫자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도 드디어 기다리던 날이 왔다. 아침에 핸드폰의 달력을 봤는데 오늘 날짜에 적금 만기 날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마도 수개월 전에 적어놓았던 듯하다. 그러고는 잊고 지냈다. 그런데 그 중요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너무도 오래전에 들었던 적금이었기 때문에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상담원에게 전화 연결을 해서 확인해 보니 정말로 오늘이 적금이 만기가 되는 날이었다.
와!!! 정말 신난다!!!!
역시 돈이 생기는 일은 기쁜 일이다. 제주에 오면서 돈 욕심을 정말 많이 버리고 왔는데, 최근에 미니멀 리스트로 살며 돈 쓸 일이 많이 생기지 않았어서, 돈이 많지 않아도사는 데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웬걸? 막상 돈이 생긴다니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기분이다.
무려 10년을 모은 돈이다. 적은 돈을 저금했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모으고 나니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 되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 같다. 10년 전의 4월의 나는 일을 그만둔 상태였다. 새 학기 시작을 앞두고5월의 결혼식을 기다리며일을 관두었기 때문이다. 그해는 결혼을 기점으로 미국으로 가서 신혼 생활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계속 일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을 그만둔 상태에서 그러니까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없던 상태에서 적금을 가입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감행했던 이유는 적은 금액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설마 매달 내 통장에 이 정도 돈도 없겠어? 이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매달 그 정도의 돈이 내 통장에 있게 되었고, 꾸준히 10년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만기날은 2023년 4월 4일, 바로 오늘이다.
10년이나 모은 돈이 분명 내 돈임이 확실한데, 막상 이렇게 큰돈이 갑자기 들어온다니 갑자기 내 돈 같지가 않기도 하다. 막상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글 쓰는 손이 떨리고 심장도 두근거린다. 이쯤 되니 이 돈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할 타이밍이 왔다. 여행도 가기 전이 신나듯이 돈이 입금되기 전부터 설레는구나! 오늘의 나는 돈이 들어오는 기쁨을 한 껏 만끽 중이다.
원래 이 돈을 모아 결혼 10주년여행을 가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10년이나 차곡차곡 모았더니 왠지 한 번에 다 쓰려니 아까운 것 같다. 실은 몇 년 전에 저 적금이 만기 되면 꼭 그것을 사야지 했던 물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방에 물건을 사는것은절대 말도 안 되는 일이다.어떻게 모은 돈인데!! 다시 저금해서 이자를 불려볼까?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다.
그러다 갑자기 이 돈이 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돈에 0이 한 개만 더 붙었더라면 남편에게 자동차 선물쯤은 거뜬하게 해 줬을 텐데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마침 남편이 엔진 오일을 갈러 갔다길래 그런 생각이들었다. 다음번 적금 만기에는 그런 기회도 생기길바라본다.
10년의 적금 만기를 앞두며 1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10년 전의 나는 아주아주 젊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을 때이고, 그저 한 달 후에 있을 결혼 식과 신혼생각을 하며 단꿈에 젖어있을 때였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세월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결혼을 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이를 낳고, 이사를 세 번이나 다니고, 그리고 제주까지 와서 살게 되었다. 10년 전의 나는 10년 후의 내가 제주에 살지는 절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지금 상황이 어찌나 신기한지 모르겠다.
오늘 적금 만기의 달콤한 늪에 빠져 이런저런 상상을 해봤다. 최대한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최선을 다해봐야겠다. 일단 내일은 당장 다른 적금에 가입해볼까 한다. 그래도 10년은 너무 긴 것 같으니 2, 3년 정도로 두 개의 적금을 들어볼까 한다. 2,3년 후에 적금을 찾으며 또 이런달콤한 날을 만끽하고 싶다. 오늘은 상상만으로도 참 행복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