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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l 13. 2023

허언증이 생긴 거야?

얼마 전 전 제주에 놀러 온 지인과 1박 2일을 함께 지냈다. 지인은 우리와 지낸 다음날에 동생과 함께 한라산을 등반한다고 했다. 한라산 등반이라고 하나 백록담까지 오르는 것은 아니고  영실까지 오른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실탐방로를 가는 것이고, 한라산 등반이긴 하나 윗세오름으로 가기 위한 코스이다.. 윗세오름은 왕복 4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아직 한라산 근처에도 안 가본 나는 "아 정말? 나 한라산 한 번도 안 가봤잖아! 진짜 가보고 싶어 나도 데려가!"라고 말하고 약속을 대충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그때 잠깐은 의지가 불타올랐으나 집으로 와서는 내가 왜 그런 약속을 했을까 후회했다. 나 왜 한라산을 올라간다고 했지?



이유인즉슨 그동안도 한라산에 가려고 마음만 먹고 가보지도 못했는데, 그것도 이미 1박 2일을 풀로 꽉 채워 지인과 놀았는데 그다음 날 또 한라산을 오를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을 리 만무했다. 심지어 여행 오는 지인을 신경 쓴 날까지 생각하면 3박 4일 정도의 체력을 이미 소비한 터. 이 몸으로 윗세오름이라면 이후 5박 6일은 몸져누워있을 것이 뻔하므로 나는 그곳을 가기를 포기했다. 솔직히 포기하기가 민망했는데 불행 중 다행히도(?) 아이가 아프게 된 바람에 못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전엔 긴가민가했었는데 나에게 허언증이라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는 것을. 요즘에 사실 내가 사람을 만날 때면 이상하게 블러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 짐작이 맞았다.



왜 갑자기 이렇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는 걸까? 왜 그러는 거지?



한참을 생각해 봤다. 그러자니 이곳에서 워낙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생활하다 보니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면 지나치게 흥분된 상태임을 생각해 냈다. 그래서 뭔가 본분을 잊고, 혹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잊고 그냥 그 순간 좋을 때로,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것 같다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려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연이어 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얼마 전 아이가 집에 와서 불평을 했다. 이유인즉슨 학교 아이들이 주말에 만나 서로의 집을 건너 다니며 놀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의 집이 멀지 않은 동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을 빼고 그렇게 놀다니 섭섭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위로하려 '엄마가 이번에 학교 엄마들 만나는데 엄마가 가서 무슨 상황인지 물어보고, 그 후에 집으로 초대할 수 있으면 해 보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엄마들과 모임을 가졌다. 일단 엄마들의 상황 설명을 듣고 오해를 풀었다. 그 후에 엄마들 보고 아이들과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말했다. 심지어 요새 우리 아이가 끔찍이도(?) 좋아하는 친구의 엄마 연락처도 받았다. 연락처를 받으면서도 과연 내가 엄마에게 따로 연락을 하게 될까? 정말로 내가 엄마와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는 한 달이 지난 지금...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마치 한국인들이 인사치레로 "우리 언제 만나 식사해요~ 차 마셔요" 하는 이런 인사만 하고 온 듯하다. 또 한 번의 블러핑이었다. 처음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결국 허물 뿐인 말이었다. 왜 하지도 못할 약속을 하는 걸까?

 






이렇게 깨달음김에 이 기회를 말미암아 이 못된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슨 거짓말쟁이도 아니고 그리고 분명 누가 피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허언증, 블러핑 이런 단어를 검색해 보게 되면서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최초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내 마음의 한 부분에서는 산에도 올라가고 싶었고, 사람도 초대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성이 돌아오자마자 왜 갑자기 열정이 확 식으며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하고 싶지 않아 지는 걸까? 결국 한라산도 오르지 못하고, 엄마들과도 어울리지 않아 아이에게 친구도 만들어줄 수도 없으니 대체 이게 뭔가 싶긴 하다.



그런데 솔직한 마음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거짓말도, 허언증도, 블러핑도 할 필요거 없다는 것이다. 역시 사람을 만나는 게 문제일까? 그렇다고 평생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 수는 없을 텐데...










한참 내 입으로 내뱉는 말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불안하던 때가 있었다. 옛말에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말 많은 집이 장맛도 쓰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등의 속담도 있지 않는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쉽게 말하고, 많이 말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진중해지고, 쉽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특히 말만 그럴듯한, 말뿐인 어른이 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더욱 점점 줄어들어 갔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도, 할 말도 많은데 쉽게 말을 할 수 없으니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점점 말을 하는 게 겁이 난다. 특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내가 바보같이, 거짓말쟁이처럼 느껴진다.  



자꾸 헛소리를 하는 나를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의 나의 단점을 내보이고 싶지 않구나, 겉모습이라도 잘 보였으면 하는 모습에 그랬을 테지 하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들 뿐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면을 다스리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런 허언증이나 블러핑으로 얼룩진 내 모습을 보니 아직도 갈길이 멀었나 보다. 어쨌든 그 사실을 지금이라도 잘 깨달아 다행이다. 앞으로는 부디 달라진 내가 되길 바란다. 거짓말은 죽어도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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