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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Sep 06. 2023

에어컨이 고장나도 괜찮을 줄 알았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덥다, 더워. 초여름 무렵 자동차를 타고 에어컨을 틀었는데 좀처럼 시원하지 않았다. 사실 평소 에어컨 바람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터라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아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가던 날이었다. 아이가 뒷좌석에서 자꾸 덥다고 짜증을 냈다. 그래서 창문을 닫고 에어컨 바람을 강도 4로 높였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가 왜 창문을 닫았냐고 화를 다. "아냐, 에어컨 틀어서 창문 닫은 거야~" "엄마, 너무 더워요 창문 열어주세요! "



분명 에어컨을 틀었는데 덥다고 창문을 열라니, 진짜 에어컨 고장인가??



소아과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내렸다. 차에서 갓 내린 아이의 모습을 보니 가관이다. 머리에 땀이 나서 흠뻑 젖었다. 분명 차를 타고 소아과를 갔는데 그때 모습은 마치 땡볕아래를 한참을 걸어 도착한 모습이었다. 땀을 잔뜩 흘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물에 빠진 생쥐 같았다. 그 정도 되니 에어컨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전부터 자동차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곧 바꿀 차를 뭘 그렇게 신경 써야 하나 싶기도 했던 것 같다. 이까짓 차 그냥 대충 타다가 새 차로 바꿔야지 하는 마음이 좀 있던 것 같다.  그런데 재밌게도 운전석은 미지근한 바람이, 조수석은 차가운 바람이(뒷좌석은 모르겠다)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조수석에 자주 앉았던 나는 에어컨 고장을 조금 늦게 눈치챘것뿐이다.




아이의 그 모습을 보고 나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카센터로 향했다. 그때가 딱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제주를 떠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그리고 다다음날은 자동차 정기검사가 있었다.



큰맘 먹고 카센터를 갔는데 오늘 자동차 수리할 것이 많아서 당일수리가 어렵다고 했다. 차가 하나뿐인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차를 다시 가지고 올 수밖에 없었다. "내일 다시 올게요~" 그리고서는 자동차 정기 검사도 받아야 했고 다른 일들도 처리해야 할 것들이 있었기에 결국 자동차의 에어컨을 고치지 못한 채 육지로 올라가고 말았다.



며칠 후면 제주에 도착할 오빠네(집과 차를 빌려주기로 했다) 에게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에어컨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 며칠은 괜찮겠지 싶었다. 참고로 내가 에어컨을 사용할 시기는 장마철이라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았을 시즌이긴 했다. 문제는 내가 육지로 간 이후로 장마가 끝나고 해가 쨍쨍한 진짜 여름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며칠 후 오빠네 가족이 제주에 다녀갔다. 제주에 있을 때 물어봤었다. "근데 자동차 에어컨은 괜찮아? 에어컨 고치고 오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고치고 왔어." 그랬더니 괜찮다고 했다. 난 그 말만 믿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제주가 별로 덥지 않은 모양이군'



그리고 오빠네가 제주에서 돌아온 며칠 후 이번엔 내가 오빠 집에 놀러 갔다. 그리고 조카들을 만났다. "얘들아 제주 잘 다녀왔어? 고모 집은 어땠어?"하고 물어봤다. 안부를 몇 마디 주고받고는 하는 말이 "엄마 고모한테 우리가 에어컨 고쳤다는 얘기 했어?" 그 순간 새언니가 조카의 입을 막았다.



아... 제주가 별로 덥지 않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그 당시 제주는 찜통더위였다고 한다. 나중에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 여행 중에 아이들이 심히 더워해서 그 길로 에어컨을 고쳐왔다고 했다. 잠깐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관광지를 방문하니 고쳐져 있었다고(!) 했다. 아이고... 제주에 여행온 사람들에게 카센터라니 이게 웬 말이냐! 에어컨이 괜찮을 줄 알았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정말 미안했다.










지금도 제주의 낮은 33도




친정에서 지내다 제주 집으로 돌아오니 아직도 한여름이다. 한낮은 33도를 웃도는 찜통이다. 자동차를 탔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에어컨을 켜봤다. 차 안이 금세 시원해졌다. 거짓말 같았다. 자동차 에어컨이 이렇게 시원한 거라고? 마치 거짓말 같았다. 새 차를 뽑은 느낌! 왜냐하면 차 안이 금방, 빠르게 시원해졌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차에서 쐴 수 있는 에어컨의 힘이구나! 작지만 강했다. 마치 10년 된 차에서 나오는 에어컨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찐 시원함이었다.  




시원한 에어컨바람을 맞으며 다시 한번 반성했다. 평소에 나는 분명 집에서도 몸이 건조하다는 이유로, 별로 안 덥다는 이유로 에어컨 켜는 것을 기피하고, 심지어 자동차의 에어컨 바람이 미미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동차 에어컨을 고치지 않아도 그렇게 큰 타격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나는 에어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에어컨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다음번에도 똑같은 일이 생긴다면 당장에 달려가 에어컨을 고쳐버릴 테다!



이제 벌써 가을이다. 그래도 제주의 낮은 마치. 여름처럼 뜨겁다. 이 남은 열기를 에어컨으로 식혀버려야겠다. 조금 늦었지만 에어컨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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