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기다렸다. 아침잠이 정말 많은 우리가 자고 싶은 시간까지 잘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푹 자고 일어났다. 아, 기분이 좋다. 날씨도 화창하다!
가볍게 아침을 먹는다. 날씨가 좋은 주말은 빵과 수프, 베이컨, 계란, 샐러드와 토마토로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을 먹은 아이는 앞집으로 달려간다. 주말이면 조부모님 댁에 놀러 오는 언니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아이가 언니들과 노는 틈에 집안 곳곳을 청소한다. 조금 춥지만 집안 곳곳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청소기를 돌린다. 햇살이 좋으니 이불을 가져다 열심히 털어본다. 이불을 터느라 팔이 조금 아프지만 먼지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니 속이 시원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신발장도 환기시키고, 현관 앞을 빗자루로 쓸어낸다. 집에 들어오는 입구가 깨끗해야 복이 들어온다던데 그동안 자주 치우지 않아 복이 오다가 달아났던 걸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적어도 오늘하루는 복이 가득 들어올까? 이렇게 깨끗한데...
우리 집 정원
올 가을은 거미가 얼마나 많던지 자고 일어나면 거미줄이 생겨 거둬야 할 판이었다. 집 크기만 할 정도로 거대한 거미줄에는 손바닥만 한 거미가 하나씩 지키고 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또 날이 조금만 따뜻해도 말벌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들던지,그들은 존재자체로도 얼마나 위협적이던지, 게다가 어떤 이유로 그들이 태양광 판 근처에 모여 왔다 갔다 거리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10월엔 나무에 달려있던 말벌집도 제거했다. 휴, 정말 무서웠다.
며칠 전엔 집 외관에 무당벌레 수십 마리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2층에 올라가 보니 무당벌레가 집안으로도 들어와 진을 치고 있었다.
제발 내일까지 집 밖으로 나가렴... 하고 기회를 줬다. 다행히도 1층에서는 무당벌레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음날 2층에 가보니 무당벌레는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올 가을은 거미와 거미줄, 말벌과 날개미 그리고 무당벌레까지 차라리 이럴 거면 겨울이 어서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었다(적어도 겨울엔 벌레들이 싹 사라지니까).
10월을 마지막으로 깎은 잔디가 이제 누렇게 변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내내 잔디와 잡초와 씨름을 했다. 그리고 이제야 잔디와 잡초지옥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대신 이제는 추위와의 싸움이다. 집 밖 햇살은 따뜻해도 집 안은 춥다. 진작부터 겨울용 실내복을 꺼내 입고, 따뜻한 물주머니를 안고, 담요를 두르고, 그것도 모자랄 땐 온열기를 켜고 바로 옆에 앉아있으면 그럭저럭 지낼만하다.
벌써 이곳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한다.
귤나무에 귤이 주렁주렁 열렸다
이미 제주는 귤 수확철이지만 집에서 키우는 귤나무는 이제야 노랗게 익어간다. 문제는 집에서 기르는 귤은 생각보다 맛이 없다. 한라봉도 열리는데 맛이 부족하다. 우리가 비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늦게 따기 때문일까?? 빨리 따서 후숙 해야 하는 걸까?
대신 여름에 먹는 하귤은 냉장고에 넣어놓고 먹으면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 수확해야 하는지 몰라 늘 늦게 수확하다 보니 조금 말라있다. 올해는 정신 차리고 과즙이 가득할 때 따먹어야겠다.
올 겨울도 귤나무와 함께
한참을 집안 곳곳 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모든 집안일을 마치고 이제야 숨을 돌린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간절한 순간이다. 곧바로 커피 한잔을 내린다.
집안을 관리하는 즐거움은 깨끗해진 집을 바라보며 마시는 이 커피 한잔에 있지 않을까? 그 순간 앗, 저기 아직 청소가 덜 되었다. 잠시 눈을 지그시 감는다. 저건 다음에청소하자... 커피 한잔 마시는 이 시간까지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이번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또 길고 긴 겨울방학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더 지낼 수 있을까? 제주에서 세 번째로 맞이하는 겨울의 초입에서 하는 생각들...
제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정확한 날은 알지 못하지만이제 익숙했던 것과 즐거움과 안녕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