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제주의 날씨는 전혀 겨울 같지 않았다. 육지도 그랬긴 했지만 어제와 오늘 제주의 온도는 20도를 웃돈다. 창문을 여니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가니 밖이 더 따뜻하다. 이런 날은 집이 더 춥게만 느껴진다.
정원을 둘러보니 푸릇푸릇하던 정원이 고작 1~2주 사이에 누렇게 변해버렸다. 정원의 전체 잔디는 이미 누렇게 변했고 곳곳에 핀 초록이들은 잔디가 아니고 잡초이다. 오늘 다 뽑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저녁에 비가 오고 나면 곧 추워질 테니 죽겠지 하는 생각에 내버려둔다. 그렇게 정원을 거닐다 피어있는 버섯을 보았다. 딱 봐도 먹지 못하는 버섯처럼 생겼는데 어떻게 여기에 자랐을까 신기했다.
지난여름 모히또를 만들어 먹겠다고 정원에 피어있는 애플민트를 모두 따 먹을 기세였다. 그런데 정말 따고 따고 또 따도 더 크고 왕성하게 자라길래 늦은 가을에는 거의 싹 정리해 주었다. 그 이후로 시름시름 앓나 했는데(갑자기 추워지기도 했고) 오늘 보니 앞자리와 옆자리에 또 푸르게 자리 잡았다. 사실 옆자리는 이미 로즈메리의 자리인데 그 아래 오밀조밀 애플민트가 피어있었다.
분명 지금은 겨울인데 새롭게 피어있는 애플민트가 얼마나 푸르르고 윤기가 나는지 지금 봄이 온 건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애플민트가 이렇게 싱싱한거보니, 봄인가?
또 주말이다. 매주 주말이 빠르게 다가온다.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는 날. 육지에서도 주말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주는 또 뭐 하지? 사실 주말마다 제주에서 열리는 행사들이 많긴하던데 어떤 주말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조용히 지낸다.
얼마 전 아이의 학교에서 건강 찾기 프로그램으로 가까운 오름이나 산 등지에 다녀오는 숙제가 있었다. 아이는 그곳에 다녀와 사진과 글을 올려서 우수상을 받았다. 참여한 모든 친구들이 선물을 받지만 조금 세분화해서 상을 준 것 같았다. 아이가 받은 우수상의 선물은 배드민턴이었다. 무려 배드민턴채와 셔틀콕까지 세트로 받아왔다.
아이는 제주에서 학교를 다닌 이후로 방과 후 수업으로 배드민턴을 배우고 있다. 처음 배울 때는 많이 힘들어했으나 매주 2회씩 배드민턴을 친 덕분에 이제는 배드민턴 치는 것이 꽤나 능숙해졌다. 이대로라면 곧 나보다 배드민턴을 잘 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주말은 새로운 배드민턴 채를 사용해 봐야겠다 생각이 든다
그러나 주말 오후 아이는 문구점에 가고 싶어 했다. 제주 중산간 마을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나마 학교는 가까이에 있지만 문구점은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그러니까 문구점 하나 제대로 없는 마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제주 시내나 서귀포 시내에 살지 않는 한 제주의 시골은 어디도 비슷할지도 모른다.
차를 타고 문구점을 갔다. 대충 15분 정도가 걸린다. 주차까지 하면 20분 정도가 걸리는데 이 정도만 하길 다행이다. 사실 오늘 서귀포로 요리수업에 가볼까 했으나 편도 47분이 걸린다는 내비게이션 시간을 보고 포기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문구점에 들어가는 발길이 가볍다. 별로 크지도 않은 문구점을 샅샅이 구경을 한다. 내가 초등학생 때에도 학교 앞에 문구점이 3개는 있어서 날마다 문구점을 하나씩 돌아가며 들렸는데, 그중에 한 곳에서는 뽑기를 자주 했고, 한 곳에서는 간식을 사 먹었는데,학교 앞 문구점이 없는 이유로 아이는 그 즐거움을 알지도 못하고, 간식을 사지도 못한다.
한참을 구경한 끝에 마음의 결정을 했다고 한다. 아이돌 포토카드 모으기에 심취한 아이는 이번엔 최애의 아이라는 만화의 아이의 포카를 구매했다. 그리고 주차된 자동차로 돌아오는 길, 문구점 근처에 있는 탕후루 가게에 들러 특별한정이라는 모둠 과일 탕후루를 샀다.
아이는 오늘 '대 최고의 하루'라고 말한다. 제주에서 바다를 가는 것도, 호텔을 가는 것도, 흑돼지를 먹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오랜만에 문구점을 가고 탕후루를 먹은 오늘이 아이에게는 최고인 하루가 된 것이다.
우리의제주의 일상은 이리도 평범하다. 늘 새로운 것을 할 수도 없고 매일 특별한 이벤트도 만들어 줄 수도 없다. 매주마다 다녀왔던 제주의 관광지는 일 년 살기에서 모두 끝내버렸던 것 같다. 이제 우린 제주에서 아주 평범하게 살아간다.
제주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쉽지 않아? 누군가는 그렇게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충분한 만족을 느낀다. 그저 오늘도 감사한 하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