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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26. 2024

가끔은 쓸모 있는 재주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즈음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면접을 다가 똑 떨어졌다. 일을 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어차피 결혼을 하면 해외살이를 해야 해서 일을 관둬야 했으므로 이 기회에 몇 달 쉬기로 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취미생활을 위한 문화센터를 다니게 되었다. 수년간 계속 일을 했던 터라 취미생활을 할 여유가 없었는데 오랜만에 생긴 여가 시간에 신났었다. 게다가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니 얼마나 부푼 마음이었을까!  



백화점과 마트에서 열리는 문화센터에는 요리, 공예, 어학, 미술, 음악 등등의 다양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중에서 그 당시 관심이 많았던 베이킹 수업을 하나 신청했고, 또 무엇을 들을까 하다가 헤어커트 강좌를 듣게 되었다. 베이킹 수업은 재밌었으나 역시 빵이나 디저트는 사 먹는 게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왜 내가 그때 헤어커트 강좌를 신청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후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것을 배운 이유는 딱 하나였을 것 같다. 아마도 미국에는 헤어숍 비용이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것도 내 머리를 자르려고 들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고 남편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기 위해 수업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홈 헤어컷' 이런 이름의 강좌였다. 수업에 드는 재료비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용가위, 헤어, 스프레이, 집게, 이발기 등의 재료를 모두 샀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자리마다 놓여있었던, 마네킹에 씌워있던 헤어를 보고 조금 놀랐기도 했다. 그러나 금세 익숙해졌다.



몇 달간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매주 대충 가르쳐주시는 듯 하지만 꽤나 신경 써서 가르쳐주시던 츤데레 선생님이 기억난다. 펌 머리의 우아했던 선생님은 미국에 가기 직전, 수업의 마지막 수업 즈음 남편을 헤어모델로 초대하셨다. 아마도 남편을 만나 두상을 체크한 후에 내가 직접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보시고는 부족한 부분을 지도해 주시겠다는 의도셨다.



정말로 남편은(그때는 남자친구) 수업시간에 맞춰 왔고, 다른 실습생들이 보는 앞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게 되었다. 선생님은 내가 가위를 들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이발기로 깎는 모습을 유심하게 보시고는 세심한 지도를 해주셨다.



선생님을 달 동안 만나 수업을 듣다 보니 정이 들어버린 시간이었다. 심지어 나는 선생님을 따라 다른 동네 문화센터로 옮기면서까지 다녔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다녀오라고 하셨다. 물론 이후로 다시 없었지만 여전히 내가 그때 배운 그 솜씨로 , 그 가위로 머리를 자르고 있으신 걸 알면 깜짝 놀라실 것 같다.




10년 정도 된 미용가위






'홈 헤어컷' 그것은 아마도 홈카페(바리스타 자격증)보다도 아니 그동안 배웠던 어떤 취미생활 중에서도 가장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취미였다.


정말로 남편은 미국에서 사는 수년간 미용실을 가지 않았다. 그때 당시(10여 년 전) 남자들 헤어를 자르려면 45~50불 정도가 들었었다. 적지는 않지만 그렇게 큰돈은 아니었었는데, 미용실을 못 갈 정도로 형편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 돈이면 맛있는 외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남편은 멋에 관심이 0일 정도로의 사람이라 머리를 집에서 자르던, 미용실에서 자르던 신경 쓰지 않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홈 미용실이 가능했던 것 같다.



한 달에 한번, 두 달에 한번 정말로 집에서 홈 미용실을 차렸었다. 그 기간 동안 나의 실력은 0에서 50까지 성장했다. 솔직히 가끔은 남편이 미용실에 가서 잘랐으면 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보다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 몸에 붙은 머리카락을 제거하는 일이 더 큰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는 내가 마치 준 미용사로 된 것 같이 머리카락을 잘 잘랐다 생각했지만, 지금 그때의 남편의 사진을 보면 흡사 영구의 머리를 가진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홈 헤어컷은 신혼인 우리에게 하나의 놀이였다. 둘이서 하는 놀이. 한 명은 심혈을 기울여 머리카락을 자르고, 한 명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세월은 흘렀고 우린 미용실 가격이 합리적인 한국에서 살게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머리를 자르는 일은 전혀 하나도 힘들지 않지만, 그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이 더 귀찮기 때문이 이곳에서는 미용실을 가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나는 그 미용가위를 여전히 갖고 있다. 서울에서 서울로 그리고 제주까지... 그리고 꾸준히 사용 중이다.



한국에서는 내 앞머리를 자르기 위해서 필요했다. 긴 머리를 가진 나지만 미용실에 가는 것은 너무 귀찮은 일이기에 앞머리 정도는 계속 내가 자르고 있다. 그러고도 10년에 산 미용가위는 여전히 정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바로 딸을 낳았기 때문이다.



이마에 점 하나가 생긴 아이는 그 점을 발견했을 때부터 앞머리를 고집했다. 이마가 동그랗게 예쁜 아이는 앞머리가 있어도, 없어도 예쁜데 하필 그 점이 이마에 있어서 무조건 앞머리가 있어야 한단다.



아이에게 앞머리가 있다는 것은 주기적으로 눈에 찌르지 않도록 잘라줘야 한다는 의미이다. 남들은 머리를 자르려면 자연스럽게 미용실에 가려고 예약을 잡지만 우리는 앞머리가 길면 '오늘밤 앞머리 잘라야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날밤 샤워를 한 후에 다른 머리를 거의 말린 후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앞머리를 자른다.



며칠 전 앞머리를 잘랐는데 아무리 잘라도 긴듯했다. 그래서 앞머리를 계속 자르다 보니 다음날 아침 앞머리가 이마 중간에 와 있었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서로 마주 보고 웃다가 갑자기 아이가 기분이 상해하길래 말했다. "다음 주면 앞머리 다시 다 자라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 마' 그 말에 아이는 안심을 한다.



물론 아이도 가끔 미용실에 간다. 아이의 긴 머리를 똑바로 자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괜히 전문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10여 년 전 몇 달 배운 취미 헤어컷을 시작으로 한참을 남편과 아이는 내게 머리를 맡겼다.  지금은 남편은 미용실에 가고 아이 앞머리, 내 앞머리 정도를 자르는 용이지만 이 정도로만 해도 이미 나의 재주는 충만했다.



그동안 배웠던 수많은 취미 중에서 어떤 것도 가장 유용하게 쓰고 있는 같다.  취미란 그저 즐거움으로 배우는 것이지만, 가끔은 도움은 되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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