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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y 21. 2024

친해질 듯 말 듯 엄마 고양이

오랜만에 생선을 구웠다. 생선을 다 먹고 상을 치우는데 밖에 누군가 와서 앉아있었다. 바로 엄마 고양이었다. 밥그릇 옆에 자리를 잡고 '나는 밥을 언제 주나용?' 하는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평상시에는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엄마 고양이, 밥 먹을 때 빼고는 스르륵 집을 지나쳐가기 일쑤인 엄마 고양이가 그곳에 앉아있었다. 웃겼다. 특히 요즘 들어 생선구울 때만 되면 자연스럽게 찾아와 앉아있곤 한다.



사실 엄마고양이는 나와 사이가 좋지 않다. 알고 보면 제주 집에 이사한 이후로 제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고양이인데 결국 여태껏 친해지지 못했다. 



그래도 사랑에 눈이 멀어  배가 불러 다니는 엄마 고양이가 불쌍해서 사료를 챙겨주고, 출산하면  건강이 걱정되어 건강식 챙겨주고, 비가 오면 불쌍해서 챙겨주고, 새끼고양이 이유식 먹을 때가 되면 음식도 가져가길래 더 넉넉히 가져다 놓기도 하고, 심지어 그 새끼 고양이를 낳아서 우리 집에 데려다 놓으면 그 고양이도 돌봐주고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이는 여전히 별로다.



특히 엄마 고양이는 사람을 심하게 경계해서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다. 물론 경계는 하나 줄곧 찾아와 음식을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내곤 하기 때문에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밥을 주면 순식간에 먹고는 곧바로 사라져 버린다. 가끔은 너무 얄밉다.




밥달라고 큰 소리치기





엄마고양이는 여전히 나와 친하지 않아서 아직도 중성화를 못 시킨 것이 큰 문제이다. 그래서 내가 본 자식 고양이만 여섯 마리이고, 남편은 두 마리이다. 그리고 요즘 저 멀리서 아기 고양이들이 우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 게 또 엄마 고양이 흔적같다.



특히 두 번째 남편은 아직도 사랑하는지 작년에 아기들을 낳고 또 얼마 전 봄에 둘이 부둥켜있는 꼴을 보니 화가 났다. '남의 정원에서 저게 뭐 하는 짓이람!!! ' 그러다가 배가 불러 다니는 모습을 생각하니 속이 터졌다. 이 정도면 거의 친정엄마 느낌이 아닌가...



특히 엄마 고양이는 자주 배가 불러 다니는 모습을 봐서 속이 터지기 일쑤인데, 또 배가 부른 모습을 보면 불쌍하고, 아기 낳고 돌보다가 핼쑥해져서 돌아다니는 오는 모습을 보면 딱해 죽겠다.



"으그... 이 바보야, 적당히 낳아!"

내가 엄마고양이를 보면 하는 소리다.



처음엔 엄마 고양이가 미웠다. 매년 아기를 낳고, 어느 정도 키우면 우리 집에 대충 놓고 가버리는 그 무책임함이 미웠다. 그러다 때가 되면 남자친구가 바뀌고 또 열심히 사랑을 나누고 그러다 당연히 배가 불러 다니는 수순에 화가 났다. 게다가 자기 밥도 챙겨주고, 자기가 낳은 새끼들 챙겨주었는데 그 마음도 모르고 여전히 경계하는 엄마고양이가 미웠다.








작년에 엄마고양이가 낳은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우리가 얼룩이, 덜룩이로 이름을 지어줬는데  한동안 돌봐주다가 어느새 뜸해지고 말았다. 특히나 한 달 반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룩이는 보이지도 않았다.



사실 얼룩이는 엄마와 닮아서 무척 예민했다. 그래도 친해진 후에 중성화를 시킬 생각이었는데 한참을 사료만 계속 먹으러 오고 겁이 어찌나 많은지, 대체 엄마 고양이에게 얼마나 훈련을 받은 것인지... 절대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얼룩이배가 불러있는 것을 보았다. 일 년밖에 안된 고양이니 아직도 내 눈엔 아기 고양이 같은데 빵빵하게 부른 배를 보니 엄마 고양이 하는 짓과 똑같아서 화가 났다. 아기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를 낳았으니 속이 답답한 노릇이다.



분명 얼마 전까지 아기고양이었는데 얼마 전 아기를 낳았는지, 최근에 밥을 먹으러 왔을 때 보니 그새 늙어 보였다. 일 년도 안된 아기고양이 모습은 마치 할머니 같았다.



순식간에 그 모습을 보며 엄마 고양이 생각이 났다. 엄마 고양이는 내가 처음 볼 때부터 성묘처럼 보였어서 그런지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는데, 알고 보면 엄마고양이도 태어난 지 몇 년 안 된 젊은 고양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가 계속 보고 있던 배부른 모습이, 고양이 인생에 한창인 임신, 출산, 육아를 반복하던 시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괜히 미워했네...? 



얼룩이 덜룩이, 벌써 작년






정원에 풍기는 생선 냄새만 맡고 있는 엄마 고양이가 불쌍해서 사료를 가져다주었다. 왠지 모르게 지저분하게 먹고 연못에 (그곳엔 물고기가 산다) 가서 물고기를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는 고양이에게 가서 잔소리를 해주었다(진짜 가까이 가면 도망가나, 어느 전도 적당한 거리에서는 있을 수 있다)  "아니~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먹어~ 어쩌고 저쩌고..." 그랬더니 엄마고양이가 그 잔소리에 맞춰서 대답을 한다. 얼씨구!



그러니까 제주에 이사 온 이후로 계속 보고 있는 고양이는 그 엄마 고양이 하나인 것이다.







사실은 미안했다. 중성화를 못 시켜준 것도 미안했고 그 어떤 고양이 하나 집안으로 들일 수 없음이 미안했다.



그들을 길고양이로 놔둘 수밖에 없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변명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특히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완전히 책임질 수 있는 용기가 없기 때문에 아직 그들을 거둬드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똑똑히 깨달았다. 이 귀여운 생명체는 귀여움 하나만 무장한 채 우리에게 와서 우리에게 온갖 아픔, 슬픔, 기쁨, 행복... 즉 희로애락을 정확히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함부로 거둘 수가 없었다(그래서 더 낳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그 책임감이 많이 무겁다, 아니 심히 버겁다. 그런 이유로 함부로 고양이를 집안에 못 들이고 겨우 어설프게 사료정도나 챙겨주는 것이다.








그래도 오랫동안 동네를 지키던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면 마음이 아플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제주를 떠나 이 집을 떠올리면 커다랗던 2층 집과 정원, 앞집 어르신들과 손녀들 그리고 엄마고양이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마트에 들러 맛있는 생선 캔을 사 와야겠다. 아마도 아기를 낳아 기르는 중의 엄마 고양이에게 특식을 제공할 때가 온 것 같기 때문이다. 다시 중성화를 시켜보려고 노력해 봐야겠으니 당분간 밀당을 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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