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아빠는자주 부엌에 들어가 계셨다. "내가 맛있는 것 해줄까?" 하고 힘차게 부엌에 들어갈 때도 있었고, 자연스럽게 들어가 계실 때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이게 진짜 맛있는 거라니까!" 하면서 조금 특이한 메뉴들이 나왔다. 어쩔 땐 입맛에 딱 맞았고, 어쩔 땐 별로이기도 했는데... 그때는 어린 나라도 알 수 있었다. 맛있다고 해야지 다음에 또 아빠가 해주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특히아빠가 잡아온 생선이나 주꾸미 혹은 바다에서 캐논 조개 등등 그리고 때론 조금 색다른 고기, 선물로 들어온 재료가 있으면 아빠가주로 요리를 하셨다. 나에게 아빠가 부엌에서 있던 모습은 익숙했다. 그럼에도 주로 보통의 날의 밥상은 엄마가 담당이셨다.
지금처럼 일을 하던 시절이 아니라 오로지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아갈 때는 내가 해야 할 일은 집안일과 아이 돌보기뿐이었다. 아이 돌보기는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가며 그리고 점점 커가며 손이 덜 가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좀처럼 집안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남편과 집안일을 절반으로 나눠 똑같이 하는 역할이었다면 훨씬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바깥일을 나는 안의일을 담당했던 터라 처음에는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점점 세월이 흘러가며 당연히 거의 내가 하는 집안일이 버거워졌다. 특히나 좋아하지도 않은 집안일을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물론 남편이 집안일을 하나도 도와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늘 부족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세월이 지나니 많이 익숙해진 집안일인데 그중에 제일 귀찮고 여전히 싫은 일은 밥상 차리는 일이다. 하루 두 끼를 매일 차려내는 것은 메뉴 선정도 쉽지 않고 특히 거의 매일 쉬지 않고 차려야 하는 밥은 정말 싫다. 이럴 때면 자연스럽게 어릴 적의 아빠가 떠오르며 남편도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하필 남편은 요리의 ㅇ도 모르는 남편이었다. 아이고야...
그러나 이렇게 산 지 10년 차가 되니 누가 집에서 밥을 차려주면 좋겠다가 소원이 되었다. 외식은 언제고 먹을 수 있었으나 집밥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긴 출장으로 집을 꽤 오랫동안 비운 남편이었다. 그 긴 출장에서 밤마다 본 드라마가 감명이 깊었다고 했다. 맥주를 마시며 반주를 곁들이는 드라마였는데, 포인트는 반주와 함께 먹는 요리를 만드는 것을 보며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후에 남편과 그 드라마를 같이 보기는 했는데, 요리를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부러웠다. 그렇다고 내가 요리를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닌데,. 그 드라마에는 재료손질이나 다 먹고 정리하는 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으니 얼마나 요리가 쉬워 보이던지! 게다가 반주에 곁들이는 요리들이 어찌나맛있어 보이던지!
그런데 남편이 우연히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10년 만에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드디어남편이 차려주는 밥을 먹는 날이 오다니! 정말로 호사를 누리는 날이 왔구나!
"밥 먹자~~~~"
일요일 아침, 아이 아빠가 소리친다.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던 아이와 나는 이제 밥 먹을 시간인가 보라며 몸을 이끌어 거실로 향한다. 아빠가 차려놓은 밥상을 보고 자동반사적으로 말한다 "우와~ 맛있겠다~~"
떡갈비, 콩나물, 무생채, 시금치, 순두부가 차려진 밥상이다. 건강밥상인가? 숟가락을 들어 열심히 먹어본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그릇에 담아놓은 모양새가 그럴듯하다. 정말로 누가 차려주는 밥상은 외식 말고는 오랜만이다. 그러니까 언젠가 출근해서 누가 매일 차려주는 점심 밥상을 받아본 이후로는 정말 오랜만이다(눈물 좀 닦자...)
사실 실제로 보면 부실하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떡갈비, 엊그제만들어 놓은 콩나물과 시금치, 사온 무생채 그리고 순두부까지...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걸 보면 내가 만들어 놓거나, 아님 함께 반찬가게에서 사 온 것들 이전 부다. 그래도 충분하기만 하다. 누가 차려준 밥상을 그냥 숟가락, 젓가락만 들어 먹을 수 있다면 말이다.
사실 이 모습은 마치 엎드려 밥상 받기의 표본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 요리를 직접 해서 주말 밥상을 차려줄 거라 기대하며 잠자코 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