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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n 24. 2024

오랜만에 제주일기

제주는 장마가 시작되었다. 지난주부터 비가 끊이지 않고 내리고 있다. 주말 오전엔 장대비가 내렸다. 하필 운전을 하는 중이었데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한 번에 와락 퍼붓고는 조금 진정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은 마치 동남아에서 내리는 스콜을 보는 것 같았다.



장마가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 앞으로 언제까지 비가 올지 모른다. 올해도 피해 없이 무사히 장마가 지나가야 할 텐데, 지난겨울 한 달 내내 비가 내렸을 때 집에 비가 더 많이 센터라 걱정이 크다.



그래도 월요일인 오늘은 비가 잠시 그쳤다. 그동안 비가 매일 내리니까 정원에 풀들이 신이 나 었다. 물론 나는 마음이 어려웠다. 그런데 비가 계속 오는 터라 정원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정원관리를 못하니 좋은 핑계였다. 다만 화단에 잡초들이 빠르게 자라나고 있어서 조금 무서웠다. 정말 잡초가 무럭무럭 자란다. 마치 비 속에  영양제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자란다.



월요일 아침부터 정원관리를 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이렇게 흐린 날, 잠시 비가 그쳤을 때라도 정원을 관리해줘야 한다. 이제 정원관리 3년 차 도가 튼 기분이다.  



무럭무럭 화단 잡초들




매일 정원관리를 하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도 관리하고 있긴 하다. 평소에는 눈에 보이는 커다란 잡초 뽑아주고 일주일에서 열흘정도 텀을 주고 잔디와 잡초를 전체 관리 해준다. 그중 가장 머리 아픈 잡초는 민들레인데, 정말 매일 뽑는데 매일 자라서 꽃을 피우고 있다. 아마 잠시라도 멈추면 정원은 아마 민들레 밭이 돼버릴지도 모른다. 길가에 핀 민들레를 보며 예쁘다고 흐뭇해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 하얗게 피어버린 민들레를 보면 너무 무섭다. 저 민들레 씨앗이 날아가 민들레 정원으로 만들어버릴까 봐 겁에 질려온다.   



오늘은 일단 잔디부터 깎았다. 사실 이제는 잔디 깎기 기계로 잔디를 깎는 일은 정말 누워서 식은  먹기다. 이제 전혀 힘들지도 않다.



금세 잔디를 깎고 화단에 풀을 뽑으러 가는데,  어느새 찾아와 있던 얼룩이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를 보고 (다른 것인 줄 알고) 소리를 질렀다. 생각보다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 꿈적도 안 하고 그 자리에 있다. 일단 기다리는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고 할 일을 마저 하러 간다.



역시 문제는 화단에 어마어마하게 자란 풀이다. 다시 화단으로 들어가 풀을 뽑는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자랐지? 한참 잡초를 뽑다가 밥을 열심히 먹고 있는 고양이에게 중얼거려 본다. '밥 좀 먹고 나서 잡초 뽑는 것 좀 돕지 그래?'



진짜 문제는 뒤쪽 화단이다. 뒤쪽까지는 손댈 수 없어서 내버려 두었는데 이제 정말 우거진 풀숲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은 깎은 잔디를 버리러 가다가 사람이 조금 다닐 정도로만 길을 정리해 본다.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 오늘은 50분 정도 정원을 관리했다. 그런데도 화단 정리를 다 못했다. 아마도 며칠 후 다시 비가 그친 어느 날 다시 화단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아직도 멀었다.



휴... 아침부터 너무 열정적이었다. 피곤하다.



왠지 그럴듯해보이는 정원이다
얼룩이가 먹고 나니 엄마고양이 입장







오늘 정원관리를 하면서 든 생각이 있었다. 이제 내가 과연 다시 도시에 가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떠나온 지 3년이라는 시간이 가까워오니 과연 내가 도시 한복판에 가서 살아본 적이 있던가 하는 것이다.



아이와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를 투어 하고, 한강을 넘나들고, 놀이공원을 연간회원권을 이용하고, 외식은 거의 쇼핑몰에서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다시 도시로 돌아가 층층이 쌓인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을 견디며,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담배연기를 참아내고,

에어컨 위를 안식처처럼 찾아온 비둘기를 쫓으며 다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제주에 살지 않았으면 모를 시골의 상쾌한 공기와(물론 시골의 냄새도), 때마다 피어나는 꽃 향기를 맡으며, 언제든 원할 때 바다를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워진 것이다.



분명 도시에서도 살았었고, 가게 되어도 잘 살게 될 텐데 생각이 많아진다. 그렇다고 제주에 영원히 살지도 못할 거면서 말이다.



초록초록 정원관리는 정말 귀찮지만 그로 하여금 마음의 여유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되려 겁이 난다.









요즘은 제주에 수국이 참 많이 피어있다. 아마도 그들은 장마라 더 싱싱하게 지내고, 더 화사하게 자라날 것이다. 수국이나 보러 다녀와야겠다.



이 장마가 끝나면 찌는듯한 더위가 찾아올 것이다. 오히려 시원한 장마가 그리울 수도 있으니 지금의 때를 또 잘 보내야겠다.


일단 제주에 있는 동안은 이곳을 즐기자.




동네 수국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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