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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n 21. 2024

사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평일은 어찌나 시간이 잘 가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고, 우리가 퇴근을 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금세 잘 시간이다.




서둘러 아이를 재우는데 잠자리에서 아이가 먹고 싶다는 것이 있었다. 바로 시금치 무침이었다. 마침 냉장고에는 사다 놓은 시금치가 있었다. 그거 해주는 것이 뭐 어렵나 싶어서 아이를 재우자마자 거실로 나와 물을 끓이고, 시금치를 씻고, 데친 후에 양념을 해서 무쳤다. 애초에 신선한 시금치 덕분에 맛도 좋았다.



그리고 내일 마실 물을 끓여두었다. 우리 집은 생수를 사 먹고는 했는데 나오는 페트병의 숫자가 어마어마해지니 요즘 마시는 물이라도 끓여마시려고 노력한다. 게다가 더운 여름이거나 장마철에는 오히려 끓여 먹는 물이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 테니까.



부엌 창문을 열어놨는데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갓 무친 시금치에서는 참기름 냄새가 솔솔 났다. 보글보글 끓는 보리차 냄새도 구수했다.



산이 가까운 이곳은 아직 밤에는 서늘하다.

시원한 밤공기를 맡고 있다 보니 맥주 한잔이 마시고 싶었다. 재밌는 예능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시원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차려놓고 마시는 한 잔.




행복이 별거냐 싶은 밤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바라는 것은 그리 크지 않았다.



평일 저녁 가족이 대화를 나누며 함께 먹는 식사, 그리고 아이를 재우고 함께 마시는 맥주 한잔, 다 함께 주말 외출 혹은 맛있는 외식을 함께 먹는 일, 셋이 즐기는 카페 타임, 일 년에 한두 번 멀리 가는 여행



때로는 부모님이나 가족들 만나 함께 식사하고

생신을 챙기고 함께 산책을 하는 것. 가끔 친구들 만나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



겨우 시작해 낸 일을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꾸준히 하는 운동 그리고 좋아하는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



저녁이면 이렇게 시금치를 무치고 물을 끓이고

제철 과일과 채소를 챙겨 먹고 때론 마트에 나온 신제품을 사 먹어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 



아이가 심어 가져온 식물이 죽지 않도록 물을 주고, 선물 받은 꽃다발이 오래가도록 물을 갈아주고, 정원에 민들레나 잡초가 자라지 않게 부지런히 관리해 주는 일들...



이제 장마철인데 새로 산 제습기가 물을 얼마나 잘 흡수하고 있나 체크하는 일, 새롭게 악기를 배워볼까 고민하는 일들...



이렇게나 소박한데... 어쩌면 너무도 소박한 일상과 생각이라 이것으로 과연 충분할까 싶은 날들인데...  그래도 이 정도면 되지 않나 싶어는 것들...



어떤 날엔 이렇게나 충만한 마음이 들면서 지금 이렇게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문제는 왜 그걸 자꾸만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은 요즘은 마음이 지옥이다. 하루에 내뱉는 한숨은 쉴 수가 없이 많고, 무엇을 봐도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어떻게 매일이 즐겁고 신나고 감사하겠느냐만 그래도 툭툭 털어내고 지내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아 고민이다.



어쩌면 너무도 원하는 것이 많은데...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 아니 내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어서, 내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결국은 내 욕심이 너무도 과한 것이 너무도 뻔히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다 갖고 있었는데 이미 그렇게 지내고 있었는데... 너무도 당연한 이 진실을 깨닫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걸까?



왜 매번 이렇게 욕심을 부리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욕심으로 찰나의 순간이 행복했고 대신 더 많이 불행하게 만들어 다. 현실과 다른 꿈을 꾸고, 욕심낼수록 힘들고 불행해지는 것은 나일 뿐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덜 욕심부릴 수 있을까?



난 그저 지금처럼 지내면 되었다.

그저 어젯밤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면 되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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