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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l 21. 2024

너의 방학은 나의 개학이야

주말이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아이 친구들과 수영장을 가기로 했다. 제주에는 여름이 되면 바닷가 옆에 수영장이 만들어지는 곳이 있다. 오늘은 그곳에 가기로 했다. 수영장... 여름이 되면 가야 하는 필수코스 같은 곳이다. 올해는 시작이 수월하다.



여태 가려고 마음만 먹다가 처음으로 가본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수질도 깨끗했고 무엇보다 수심이 깊지 않아 아이들끼리 놀기 딱 좋았다. 혼자 만 데리고 가면 계속 놀아달라는 외동아이는 친구들과 간 수영장에서 잘 어울려 놀았다. 처음에는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더니 3시간 연속 수영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안 했는데, 겨우 수영장에 갔다가 왔을 뿐인데 몸이 조금 피곤하다. 사실 몸보다 머리가 더 피곤한 것 같다. 여름이 되면 여행을 가고, 수영장을 가고, 아니면 새로운 어디라도 데려가고 그래야 할 것만 같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숙명 같은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은 매년 반복된다.










여름방학이 다가온다. 약간 두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아이의 방학은 나의 개학이기 때문이다. 너의 기쁨이 나의 슬픔(?)이 되다니 아쉽다. 특히나 올해 나의 직장은 여름휴가도 없이 일할 예정인데, 너의 방학과 겹쳐 일을 계속해야 한다니 정신이 없을 것 같다.



학교를 다니기 이전에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방학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어린이집의 방학은 고작 일주일, 유치원은 그것보다 조금 더 길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학교에 입학하니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작년 학교에 입학 후 첫 여름 방학은 멋모르고 지나갔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은 육지를 나갔다 오고 그리고 여름휴가를 한번 다녀오면 사라지는 그 정도의 기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겨울 방학은 달랐다. 두 달이나 되는 겨울방학은 정말 길었다. 이대로 영원히 방학이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트라우마가 생길 뻔했다. 아... 그래서 부모들이 방학만 되면 특강을 보내고, 보딩스쿨 보내고 서머, 윈터스쿨을 보내고 그러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직접 겪어보니 알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사실 한두 번이야 그냥 그러려니 하겠는데, 우리 아이는 작년에 학교에 입학했으니 앞으로 방학이 몇 번이 남은 걸까 세어보다가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다. 아휴... 두 손이 모자라게 방학이 남았다.



갑자기 당장이라도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진다.










어릴 적 나의 방학은 어떠했을까? 여름이면 바닷가를 가고 계곡에 갔었다. 오랜만에 친척들과 만나 바닷가에 가서 조개를 잡거나 수영을 했고, 때론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차가운 수박을 먹고, 텐트를 치고 잠을 자고 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겨울은 집에서 떼굴거리며 귤을 까먹으며 티브이를 열심히 봤던 같다. 친척동생이 놀러 와 함께 놀기도 하고 그러다 스키를 배운 후부터는 가끔 타러도 강원도에도 갔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특별히 무엇을 놀고 했던  기억보다는 '방학은 참 짧았다' 는 기억이 더 선명하다. 그 길었던 겨울방학마저 정말 순식간이었다. 심지어 방학숙제를 제대로 할 여유 시간이 없어(?) 밀린 일기를 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많다.




그런데 부모가 되어 맞이한 아이의 방학은 달랐다. 일단 방학이 다가오면 마음이 바빠진다. 올여름엔 무엇을 해야 할까, 대체 방학에 무엇을 멋들어지게 해줘야만 하는 걸까. 새로운 무엇인가라도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닐까? 다음 학기를 위한 공부도 준비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방학인만큼 특별한 이벤트로 아이를 신나게 해줘야 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나마 지금은 제주에 있어서 다행이다. 심심하면 지천에 깔린 관광지를 하나씩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못 가본 해수욕장을 하나씩 골라 가기만 해도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휴... 제주에 살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일단 여름엔 바다로







제주에서 여름을 즐긴다. 물론 그게 전부라면 좋겠지만, 우리는 제주에 살기 때문에 방학이면 육지를 가야 할 것 같다. 육지 사람들이 방학이라고, 휴가라고 제주로 여행을 오듯이 반대로 우리는 육지에 가야 할 것만 같다. 사실 꼭 육지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 육지에 계신 조부모님들이 기다리고 계신다. 평소에 자주 못 보니까 방학이라도 아이를 길게 보고 싶어 하시는 것이 그 이유이다.



어쩌면 다행인 걸까 올해 나는 휴가가 없어서 육지에 가지 못한다. 그래서 일단 방학이 시작하면 아이는 아빠와 함께 조부모님 댁에 며칠간 가기로 했다.



그러나 아이가 육지에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면서도 불편하다. 아이는 현재 치아에 교정장치를 부착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저녁 신경 써서 양치를 마무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여자아이라 씻기는 것도 그렇고... 그곳엔 모기도 많다. 무엇보다 최악은 갑자기 멀쩡하던 비염이 확 심해져 돌아온다.



그렇지만 조용히 눈감고 보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방학의 몇일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그러니 그곳에서 무엇을 먹고, 입고, 씻고 잠자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말기로 한다.  








아이가 방학이면 아이랑 뭘 하며 놀까 신나 하는 부모님들도 많다. 부럽다. 그 정신상태와 그들의 체력이 부럽다. 다만 우리 아이에게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라 미안할 뿐이다. 차라리 뭘 하며 놀까 걱정이나 말던지,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아이는 괜찮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방학 그까짓 게 뭐라고 렇게 부담인걸까! 분명 이게 다 길고 길었던 겨울방학 탓이다. 겨울방학은 정말 긴데 해수욕장인 선택지가 사라지고, 제주 집은 어찌나 추운지 모든 게 다 별로이기 때문이다!!!




암튼 이제 겨우 두 번째 여름방학이다. 일단 제주에 사는 동안은 방학 걱정은 조금 덜어둘까 한다.  마치 제주에 여행온 기분으로 지내면 되고 아니면 육지에 잠시 맡겨놔도 될 테니 마음을 비워두자!



모든 부모님들, 이번 여름방학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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