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요리도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던 스무 살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남자친구의 생일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생일날에 미역국이 필수니 그것을 꼭 끓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미역국에 고기와 미역이 들어가는 것만 알고 있었다. 다른 부재료는 뭐가 필요한지도 몰랐던 것 같다. 일당 미역은 마트에서 적당한 것으로 샀다. 그리고 고기를 사러 동네의 작은 정육점에 갔다. 소고기의 어떤 부위로 미역국을 끓이는지 몰라 미역국을 끓일 것이라고 말하고 그곳에서 주는 소고기를 샀다. 소고기를 계산하고 보니 가격에 비해 고기의 양이 너무 적어서 좀 놀랬다. 그러니까 그 나이 먹도록 미역국을 끓여본 적도, 미역국에는 다진 마늘과 간장이 필요한 것도, 어느 부위의 소고기가 필요한지도 모르던 때도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날 대체 어떻게 미역국을 끓였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장 먼저 미역을 불렸다. 그리고 가진 것 중에 가장 커다란 냄비에 고기를 넣고 볶다가 미역을 넣었다. 문제는 미역국을 끓여본 적이 없어서 미역을 너무 많이 불렸더니 결국 적었던 고기의 맛이 전혀느껴지지 않았던 미역국을 끓였던 것 같다. 분명 미역을 많이 넣어서 분명 엄청 커다란 냄비에 미역국을 끓였던 기억은 나는데... 그 후에 미역국을 먹은 기억도 그 맛도, 그후의 일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방금 미역국을 끓이다가그날이 생각났다. 적게 샀던 소고기, 엄청나게 많았던 불린 미역이 생각났다. 물론 그렇다고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아이가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했다. 아이는 내가 끓인 미역국을 참 좋아한다. 물론 처음부터 내가 끓인 미역국이 맛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살림을 한지 몇년이 지났는데도, 요리를 못하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참 동안미역국이 맛있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양한 레시피를 찾아보고 더 맛있게 해 준다는 조미료도 넣고 그렇게 또 한참을 미역국을 끓이고 또 끓이고했더니, 정말 나날이 미역국의 맛이 발전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눈감고도 미역국을 끓일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여전히 미역의 양은 못 맞히겠다. 말린 미역을 물에 넣고 조금 있다 보면 미역이 불어있는데 그때마다 놀란다. '오늘도 또 많이 불렸군'
어쨌든 오늘은 지난번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던 미역을 해치우는 날이다. 어제 일부러 마트에가서 소고기를 사 왔다. 재밌는 건 수년이 흘렀는데 그때보다 지금 가격에 비해 소고기의 양이 훨씬 많아진 기분이다. 원래 소고기도 듬뿍 넣고 미역도 많이 넣어서 여러 번 먹을 양을 끓이는데, 오늘은 가진 미역의 양에 따라 가장 작은 냄비에 끓여보기로 했다. 이렇게 적은 양의 미역국을 끓이는 것은 처음이다.
보글보글 미역국
요즘 내가 끓인 미역국은 참 맛있다. 그러나 엄마의 미역국은 차원이 다르다. 엄마의 미역국이 얼마나 맛있냐면 입이 짧은 우리 조카가 본인 엄마가 만든 미역국보다 할머니 미역국을 더 좋아할 정도다. 물론 이것 가지고는 엄마의 미역국이 정말 맛있는지는 증명할 길이 없지만 암튼 정말 맛있다.
엄마와 내가 미역국을 끓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나는 간편식으로 끓이고 엄마는 전통식으로 미역국을 끓이는 느낌이 든다. 엄마는 압력 속에 덩어리로 된 소고기를 넣고 푹 삶은 후에 미역국을 만드셨다. 어릴 적엔 그 고기를 자를 때 옆에서 꼭 얻어먹고는 했다. 푹 익혀진 고기의 맛은 정말 황홀하다. 그러나 주로 나는 미역국을 끓일 때 작게 잘라진 소고기와 다진 마늘을 참기름에 볶은 후에 그리고 미역을 넣어 볶는다. 그 후에 물을 넣고 끓이는 식이다.
압력솥 때문인지 엄마의 손맛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엄마의 미역국은 국물의 깊이가 다르다. 분명 둘 다 영향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국물의 깊이를 내기 위해 코인육수를 넣거나 아니면 참치액을 넣는다. 이렇게 직접 글로 쓰다 보니 엄마의 미역국은 근본 있는 미역국 같고 내 미역국은 약간 야매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몇 해 전 아이를 낳은 후 내내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었다. 임신 중에는 엄마의 음식을 먹을 수 없었는데 아이를 낳고는 미역국을 실컷먹을 수 있었다.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에서는 정말 엄마의 맛이 났다. 산모에게는 미역국이 보약 같은 느낌이니까 정말 먹고 또 먹었다. 후에 아이를 데리고 잠시 친정에 살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미역국을 먹고 또 먹었었다.
그러다 정말 잠깐 미역국이 물리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다시 시간이 지나서 다시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우리 가족은 거의 주말 아침 한 끼를 미역국으로 시작한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미역국을 대량으로 만들어 놓고 냉동실에 얼려 보관해 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의 한 끼는 무조건 미역국으로 먹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가끔 소고기뭇국도 곰탕도 다른 국으로 먹기는 한다. 그래도 아이에게 '내일(주말) 아침은 무엇을 먹을래?'하고 물어보면 주로 '미역국'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큰 노력 없이 주말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주말마다 찾는 음식... 아마도 내 아이가 커서 나의 음식을 떠올리면 '미역국'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싶어 진다.
엄마가 끓여주던 미역국, 그리고 내 아이에게 끓여주는 미역국. 분명 그 맛의 깊이는 다르지만 우리가족의소울푸드 임은확실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