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제주낭만

집에 귤 있어?

귤과 인간관계

by Blair

'제주에 살면서 귤을 사 먹는다면 인간관계를 의심해 보라'는 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무엇 귤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논하나... 그러나 나도 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인간관계가 최악인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주에 사는 3년 내내 귤을 열심히도 사 먹었다. 그런데 제주에서 직거래라고 엄청 싸게 사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또 마트나 인터넷 마트는 균일가라 귤이 싸지도 않았다.



그러다 제주 지천에 깔린 귤을 사 먹는 것이 억울해 서 한라봉, 천혜향, 황금향등의 값비싼 만감류를 골고루 주문해서도 먹었다. 역시 고급 귤답게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을 사 먹느라 가계에는 점점 펑크가 생겼고 그리고 제주에 사는데 귤을 사 먹는 내 처지에 종종 마음이 아팠다.



사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제주에 와서 귤을 사 먹는 것은 조금 아까웠지만, 귤을 공짜로 먹으려고 그 수많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이미 내 역량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필요 이상의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고, 또한 그것보다 쓸데없이 사사로운 것에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제주에서 고립된 삶은 꽤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지천에 귤이 가득한데... 왜... 왜...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여기저기에서 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주의 귤밭의 귤은 대체 다 어디로 가나, 집 아래 있는 귤 농장에서 일이라도 시작하고, 올해는 돈도 벌고 귤이라도 얻어먹어볼까 했는데...! 올해 겨울이 시작한 이래로 집에 귤이 마를 날이 없다.



일단 올해는 제주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직장에서도 귤을 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명절에도 황금향으로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제주에서도 그런 만감류를 받으면 사랑이라던데, 뭔가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명절 선물로 받은 황금향을 들고 육지를 갔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그리고 추워진 겨울, 본격적으로 제주에 귤 철이 돌아오자 매주 귤을 봉지 가득 가져다주시기 시작했다. 그것도 시고 맛없는 귤이 아니라 고당도의 맛있는 귤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그냥 귤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일하면 귤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곳, 그곳은 역시 제주 뿐인가?







내게 드디어 공짜로 귤을 먹는 때가 왔는데 일을 시작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주 3년 차가 되었더니 집 앞에 귤을 가득 두고 가는 지인들이 생겼다. 이곳에 살면서 정말로 원치 않아도 알게 되는 인연들이 있었다. 그들은 올해 내게 귤을 듬뿍 선물해 줬다. 우리 집이 어딘지도 몰랐을 적엔, 우리가 알아도 아는 사람이 아닐 적엔 귤이 오가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귤이 넘치도록 들어왔다. 우리 가족이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을 만큼의 양이 있다.



그것도 모질라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집에 귤 있어?"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겨울의 인사말이 집에 귤이 있냐니! 정말 재밌는 지역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귤로 만든 잼도 내게 선물해 주었다.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새콤달콤한 귤잼은 정말 매력만점이었다. 올해는 정말 귤을 원 없이 먹어보는구나 신이 났다.



귤이 넘치고 넘쳐요... 정말 좋네요





그 덕분일까? 아직 겨울이 되고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은 귤의 효능 덕분일까?

매일같이 귤을 듬뿍 먹으니 다른 영양제가 필요 없다. 이미 비타민 c다 넘치도록 보충되고 있다.



귤을 챙겨주는 그들에게서 사랑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올 겨울은 참 따뜻하다. 육지에서 온 내게 귤 안부를 물어주는 그 마음, 아마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만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