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에 미련을 두는 마음은 금방 내려놓자고 말입니다.
이 물건과의 연은 여기까지였던 것뿐이라고요.
오늘의 기본 / 소원 / p35
어제 유리 물병이 깨졌다. 몇 해 전 생일 선물로 드립세트와 함께 선물 받은 유리보틀이었다. 유리컵임에도 불구하고 수년동안 참 잘 사용했다. 처음엔 드립커피용으로 사용했으나 요즘엔 드립커피를 마시지 않는지라 최근엔 끓여놓은 물을 담아 난로 위에 올려놓고 잘 쓰고 있다. 어찌 보면 내가 가진 것 중에 조금 아끼는 축에 속했던 물건이었다.
설거지 담당 남편은 지난번부터 지금까지 이런저런 그릇을 깨고 있는데 어제는 하필 그 유리보틀이 깨트린 것이다. 나도 가끔 세게 올려놓는 일이 있긴 했는데 그래서 그때마다 깨질까 불안했는데 기어이 깨지고야 만 것이다. 원래의 나라면 정말로 아까워하고, 설거지 한 남편에게 가서 구시렁거렸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 컵이 깨진 것이 그렇게 아깝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상하리만큼 아깝지 않다.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몇 년간 매일같이 잘 썼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쓴 물건은 때로는 이렇게 가뿐히 보내줄 수도 있는 것 같다.
아주 잘 사용했다.
최근에 유리잔을 한두 개 더 깨기도 하고, 심지어 아주 자주 쓰던 커다란 접시도 깼다. 원래대로라면 그 후로도 두고두고 생각나고(?) 아깝다 생각했을 텐데 이제 별로 생각나지도 않는다.
'계속 깨져라. 깨져도 할 수 없지. 나중에 더 예쁜 것으로 사면될 거야!' 기회가 닿는 대로 더 예쁘고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사서 더 잘 쓰면 될 거야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오히려 그릇이 깨질수록, 내가 원치 않아도 의도하지 않아도 물건이 줄어드니 좋은 점도 있다.
원래부터 물건 욕심이 많았다. 이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아주 어릴 때부터 물건에 집착이 심했다. 특히 특정 물건을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물건은 거의 신적인 존재가 돼버렸다. 겨우 고작 물건인 것을 그것을 잃어버릴까, 닳아버릴까 전전긍긍...
문제는 그렇게 아끼느라 똥 되는 물건이 어마어마했다. 차라리 그렇게 잊힐 물건이었다면 아끼지나 말 것을, 제대로 사용이나 해버릴 것을... 그동안의 행동을 모두 후회했다.
한 번의 깨달음이 무섭다. 그 후로는 예쁜 물건도 아낌없이 사용한다. 솔직히 여전히 아까운 마음이 조금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까운 마음보다 기쁜 마음이 더 많이 드는 것이다. 그만큼 좋아하는 물건인 까닭이다. 대신 자주 열심히 사용함으로서 아깝다는 마음보다 잘 살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더 들곤한다.
본투비 미니멀리스트 남편은 물건에 욕심이 없다. 그리고 물건은 편하게 사용하자 주의이다. 그는 늘 물건이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물건은 고작 물건일 뿐이라고.
그렇다. 물건은 고작 그것으로 쓰임을 다하다 그만하면 될 것인데 그동안 너무 물건에 의미부여를 많이 했다.
물론 이 마음은 그토록 많이 사고, 아끼고, 버린 후에야 깨달은 것이다.
가진 물건을 최선을 다해 사용하는 것, 그리고 그 최선을 다해 사용할 물건을 심혈을 기울여 골라 구매하는 것.
나는 이런 것이 참 즐겁다. 아끼는 물건을 오래도록 잘 쓰고 싶은 마음, 물건을 허투루 사지 않는 습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조차도 참 소중하다.
일상에서 중요한 건 분명 물건이 아니다.
이제 그만 물건에 미련을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