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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꿈꾸는 일상

by Blair

잡초를 뽑다가 정원을 바라보는데 정원이 왠지 심심하다. 몇 달 전만 해도 귤나무에 노란 귤이 주렁주렁 열려있어 눈 속에서도 싱그러운 자태의 귤이 있었다. 그런데 봄에 집주인이 와서 정원을 한번 정리해 주었는데 그때 남은 귤과 하귤을 모두 따버렸다. 그래서 귤나무도 정원도 왠지 밋밋하다. 노랑노랑한 귤이 없으니 왠지 낭만도 없어 보인다.




일부러 귤을 따먹지 않고 대롱대롱 달린 귤나무를 바라보며 참 낭만 있는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평범해진 초록나무를 보니 왠지 별로다. 그런데 귤나무 가까이 가봤더니 벌써 꽃이 지고 그 자리에 작은 귤이 열리고 있다. 벌써 7월이니 한창 자랄 때다. 그래야 다시 겨울이 되어 귤이 열릴 테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 겨울이 되면 낭만을 꿈꿀 수 있겠다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현재 귤나무
겨울의 낭만가득한 귤나무





'낭만'



정원을 한 시간째 가꾸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 정원이 있는 집에 살아보겠다는 낭만이 없었다면 제주에 내려올 일도 없었다. 가지런히 쌓인 돌담 아래 자라고 있는 귤나무들과 야자수나무. 그리고 초록이 무성한 정원 있는 제주 집에 살아보니 낭만이 전부인 때가 있었다.



분명 민들레 홀씨 때문에 정원에 매일같이 퍼져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민들레를 매일 몇 개씩 뽑아내며 '이놈의 민들레!' 하며 진절머리 치면서도 언젠가 다시 한번 정원이 있는 집에 살아보겠다고 꿈꾼다.



그리고 그때는 꼭 앵두나무를 심어 따먹어보겠다며 또 낭만을 꿈꾼다. 이름도 '앵두나무집'이라고 이미 지어두었다.




매 순간 이런 낭만을 꿈꾸며 산다.








예전에는 내가 다니는 여행이, 그곳에서 본 새롭고 신비한 것만이 낭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늘 먹던 것과 다른 음식, 늘 듣던 한국어와 다른 언어, 평소에 해볼 일이 없던 새로운 액티비티, 우리 동네에는 없는 웅장한 성당, 동네를 한 바퀴 도는 미니 기차, 슈퍼에 파는 햄과 수많은 치즈들, 이름조차 읽기 어려운 포장패키지, 다른 언어로 쓰인 빈티지 책들... 그런 것들만 낭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낭만은 꼭 지구 반대편에 있지 않아도, 새로운 여행에서만 찾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그곳에서는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지만 지금도 고작 노랗고 작은 귤이 달린 나무에서 낭만을 볼 수 있으니까.




여름이면 불 앞에서 요리하는 것 대신 초당옥수수 하나를 쪄 먹으며 행복해하는 것도, 저녁이면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컵에 맥주 한잔 따라 마시며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것도,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것도, 깜깜하고 고요한 밤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것도 정말 낭만적이다.




아! 이번 주에는 그 낭만을 위하여 '반딧불이 체험'을 예약해 놓았다.



여름밤에 수 놓인 반짝이는 별들 아래, 숲 속 사이사이 반짝이는 반딧불 친구들을 만나면 여름의 낭만은 더 극대화될 테니까!




이런 작은 낭만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









낭만은 순간의 여유에서 온다. 때론 땀을 뻘뻘 흘리며 잔디를 깎다가 만나는 작은 꽃에서도, 아이의 등하굣길에 만나는 커다란 네 잎클로에서도, 수국이 가득 심겨있는 정원을 지나며 물을 가득 머금고 있는 꽃들을 보는 것에도 곧 피어날 능소화의 작은 봉오리를 보는 것으로도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장마가 올 듯 말 듯 매일 흐린 날씨에 지내다가, 오래간만에 뜬 해가 반가워 정원에 의자를 가지고 앉아, 보고 싶었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낭만적인가.




의 생일파티에 친구가 꽃을 들고 왔다. 어디서 꽃을 주문해 화려한 꽃다발이 아닌, 집 앞의 들꽃을 꺾어서 그리고 정원에 핀 수국을 잘라 만든 꽃다발이었다.



같은 반 여자친구의 생일에 꽃다발을 선물하는 그 모습이 너무도 낭만적이었다.











오늘은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를 찾아 방문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에어컨 아래에서 쉬고 있던 멍멍이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카페에서 지내는 멍멍이이라 그런지 프렌들리 하다. 내게로 가까이 다가온다. 혹시 만지는 것이 싫을까 싶어 가만히 있는데 발로 나를 툭툭 친다. 먼저 만져달라고 손 내미는 이런 강아지가 있는 카페라니! 고소한 커피 향 가득한 카페에서 달콤한 커피에, 귀여운 강아지라니! 오늘은 아침부터 낭만이 넘친다.




매 순간 낭만을 꿈꾸고 싶다. 아주 소박하지만 그 자체로서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 낭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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