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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출근이 하고 싶었어

by Blair

출근 전에 도서관에 들렸다. 나는 그곳에서 모자에 티셔츠 그리고 편한 반바지를 입은 여자를 마주했다. 사실은 그 겉모습보다 멍해 보이는 얼굴이 과거 내 모습을 마주하는 듯했다.



그때의 나는 삶의 의욕이 없었다. 재미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었다. 도통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고 또 들었다. 어떤 날은 잠시 반짝였지만 자주 어둡고 침울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서는 도서관에 가거나 카페 찾아가기 그리고 마트에 가서 장 보는 일이 전부인 때가 있었다. 정말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답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나만 잘하는 게 없어서... 이대로 아무 쓸모가 없어질까 봐 겁이 났다.





걱정만 늘어나던 시절









그렇다고 그 시절이 불행만 했던 것은 아니다. 전업주부이던 시절의 나는 꽤나 편한 생활을 했다. 매일 가족을 위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그런 일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히 집안이 돌아갈 수 있게만 만들면 되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아이는 겨우 한 명이었고, 아이가 학교에 가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매일이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자유는 없었지만 여유는 있었다. 덕분에 다양한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는 삶이 가능했다.




때로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렀고, 시간이 많으니 평일 낮 한가하게 브런치를 즐기기도 했으며, 멀리 떠날 때도 있었다. 때로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시간 부자였다. 내 할 일만 적당히 끝내놓으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제대로 쓸 줄을 모르고 끝끝내 매일을 허비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인지 모르고 매일을 대충 살았다. 하루하루 시간만 흘러갈 뿐이었다.












그래서 출근을 하고 싶었다. 조금 달라진 나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로서의 나.




요즘의 나는 출근을 한다. 출근을 한다고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후 근무일 때는 아침에 부지런하게 움직여 도서관도 들리고 카페에도 가기도 한다.



일을 한다고 집안일을 누군가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도 해야 한다. 그러니까 결국 일과 집안일까지 모두 만능으로 하는 내가 되었다.







워킹맘들이 부러웠어




다만 출근 후에는 예전보다 달라진 것이 너무도 많다. 멍하게 지내는 것도 사라졌고, 쓸데없는 생각도 덜하게 되었고, 조금 더 깔끔한 모습으로 지내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일도 집안일도 동시에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있다.








내가 잘하는 무엇인가를 하러 나가는 것만으로, 매일 같은 시간 어느 곳에 내가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으로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내가 잘 지낼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분명 내가 하는 일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동시에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일이기도 하다.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는 요즘은 매일을 성실하게 잘 해내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오늘도 잘했구나 해냈구나. 넌 잘하고 있구나. 적어도 나는 오늘 하루를 대충 흘려보내지 않는다.



알찬 하루를 보내는 일만으로도 내가 출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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