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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Dec 28. 2023

27. 군중 속의 고독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종합병원은 올 때마다 사람들로 붐빈다. 아픈 사람이 어찌 그리 많은지.  개인의 사연 있는 삶들이 이곳 병원으로 집중해 온다. 지금 병원 안을 웅성거리며 오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나 홀로 있다. 군중 속의 일인.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던 30,40대. 삶에 지치면 하얀 침대보가 덮인 병상에 누워 한두 달 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생겨나곤 했다. 내 주변을 휘감 도는 삶의 무게가 버거워질 때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피신하여 혼자 있고 싶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한지 바른 방문을 흔들어 대고, 헐거운 문틈을 맹렬히 파고드는 깊은 밤. 좁은 방가족들이 옹기종기 누워 두꺼운 무명솜이불을 콧등까지 덮어쓰고 곤히 잠들어 있는데, 어린 나는 방안을 가득 메운 한기를 느끼며 홀로 눈을 뜨고 있다. 맹렬한 바람소리와 깊은 어둠이 주는 두려움에 잠에서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하고 허공만 응시했다. 가족과 함께 있지만 온전히 혼자된 느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따라 저녁예배에 참석했었다. 어린 나는 예배 중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예배가 끝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고 있었다. 외할아버지 내외가 보이지 않아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주변은 깜깜했고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을 몰랐다. 주위에 사람들은 가득했고 그들의 집을 향한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내 귀를 울려댔으나, 나 홀로 정처를 모르는 두려움. 다행히 당황하여 나를 찾으시던 외할아버지를 극적으로 만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 한다.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동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와 잠시 얼굴을 마주하였다. 오래전 일이라 그때 뭐라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잘하고 와" 정도였지 않았을까. 수술실을 홀로 들어가는 아내의 하얀 홑이불 속 발끝이 마지막으로 보였다가 사라졌다. 내가 같이 하지 못하고 아내 홀로 수술실 안의 두려움. 고통. 외로움을 온통 받아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잠시 눈물 조금.


여하튼 나는 아직까지 병실에서 하얀 침대보가 깔린 침대에 누워있는 경험은 하지 못했다. 당연히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예전의 치기 어린 소원을 이루지 못한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스먼은 대중 사회 속에서 타인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내면의 고립감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성격을 가리켜 '군중 속의 고독'이라 칭하였다 한다. 주변의 사람들과 같이 하지만, 가끔씩 튀어나오는 혼자인 듯한 외로움. 혼자이고 싶지만, 사회의 진정한 일원이고 싶은 이중적 마음.


집에 들어서면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아내. 늘 나의 처한 상황과 감정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가장 적절한 언어로 힘을 북돋아 준다. 그리 살갑지 않은 남자들인 내 아이들은 엉성한 부자지간의 관계를 신뢰로 메워준다. 포용으로 조용히 응원하시는 양가 부모님. 언제든 흉허물 없이 만나 내편이 되어주는 구동료들 등등.


그들이 옆에 있으므로 언젠가 갑자기 외로움에 떨다가, 또 어느 순간 내 마음대로 그들의 품으로 뛰어들어 외로움을 달랜다. '군중 속의 고독'을 그렇게 치유하며 살아간다.

출처: 네이버(파울 피세르,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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