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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Feb 24. 2024

33. 낮잠에서 깨어나다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피곤함에 눈을 감는다.


눈감은 깜깜한 세상에서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한 상상 속을 이리저리 헤매다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든다. 잠 속 세상에서도 목적지를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애타다 잠 깨어 현실 세상으로 돌아온다.


몸은 무겁고, 손가락은 부어 감각이 없다. 초점을 잃은 멍한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서서히 손가락 감각이 돌아오며, 정신도 다시 돌아온다. 눈감은 세상과 잠 속 세상을 헤맨 까닭인지, 전날 과음한 듯 머리가 묵직하다.


우리 부부가 낳아 기른 두 아이가 이제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해 생활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퇴직을 목전에 둔 나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길에 오르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뿌듯하면서도 마음 아프다. 앞으로 내가 걸어왔던 험한 길을 되짚으며 살아갈 아이들이 기뻐할 일보다 힘들어할 일이 더 많을까 봐 걱정이 된다. 어둑한 아침을 깨우며 출근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기도를 한다. 그들의 삶이 평안하고 건강하길, 더하여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작은 아이 졸업식에 참석하러 가는 택시 안에서 나눈 기사님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평소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던 주제이다. 투박하게 던지는 기사님의 주장 내 마음도 공명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저런 질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질병의 마지막에는 질병의 고통으로 힘들고, 경제적으로 힘들고, 옆을 지키는 가족들이 힘들다. 모든 것을 희생하여 생명을 연장한다 하더라도,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질병의 고통을 못 이겨 농약을 먹고 자살한 친척의 이야기를 무심하게 꺼내 놓으며,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택시기사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물론 죽음을 눈앞에 둔 본인의 심정을 제삼자가 헤아릴 수는 없다. 나 또한 그러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단 하루라도 더 숨 쉬고 싶은 간절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질병의 극심한 고통에 순간순간을 견디기 힘들어, 그러한 고통을 끝내기를 원하는 환자들의 선택은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신이 주신 생명을 인간이 임의로 마친다는 것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질병의 장기간의 고통과 주변에 끼치는 실례를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은 존중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굳이 스위스에 가지 않고서도, 보고 싶은 생전의 풍광을 눈에 가득 담아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짧은 낮잠에 드는 것처럼 이 세상을 가볍게 하직하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 아닐지.


운 좋게 직장을 구하고 밝은 날 기쁘게 대학졸업을 하는 작은 아이의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피곤하여 나도 모르게 낮잠에 빠져들었다. 짧은 잠에서 깨어나 멍하니 앉아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는 나는 완연한 초로의 모습을  중년남자이다.


행복하게도 이제는 아이들이 장성하여 스스로 살아갈 기반을 마련하였고, 아내와 나도 비교적 평안히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고 평안하길 원하지만, 인생이란 한치의 앞날도 모르는 것이니, 언젠가 기나긴 질병의 시간이 나에게 찾아온다면, 그래서 죽음이 가까워 온다면, 조용히 삶을 내려놓고 긴 낮잠에 빠지고 싶다. 깨어나지 않는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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