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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Oct 03. 2023

샌디에이고의  추억(1)

집 근처 언덕길의 도로를 박차고 오르면,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햇살을 머금고 밝게 빛나 눈이 부셨다. 샌디에이고의 봄날.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언덕길을 넘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내뱉던 말. "아~ 아름답다"


우리 부부 나이 30대 후반, 터울이 있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과 유치원생일 때 직장에서 선발하여 보내주는 MBA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미국 샌디에이고에 잠시 기거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족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던 때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장시간 비행에 힘들다며 칭얼거리던 둘째가 잠잠해질 무렵, LA 공항에 도착했다. LA에서 샌디에이고로 가기 위해 미리 섭외해 둔 승차와 기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샌디에이고를 향해 달리던 차 안. 아름다운 풍경이 차창 밖을 스쳐 지나가는데, 장거 비행에 힘들었는지 가족들은 잠들어 있고 나 혼자 말똥말똥하여 지나가는 풍경들을 무심히 바라본다. 호기롭게 가족들을 머나먼 이국땅에 데려왔지만, 막상 고개 숙이고 잠든 가족들을 바라보니 '영어도 서툰 내가, 이곳 문화를 전혀 모르는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차올라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진다.


우리가 살 집에 짐을 부리는 것을 도와준 기사는 인사를 하고 떠나고 텅 빈 집에 덩그러니 우리 가족만 남았다. 피곤하여 가지고 온 짐을 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먼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냄비를 짐 속에서 어렵게 찾아내었다. 주방에 설치된 전기레인지를 켜려고 스위치를 돌렸으나 켜지지 않았다. 처음 접하는 전기레인지를 이곳저곳 살펴보았으나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결국 라면을 끓여 먹지 못하고 집 근처 마트에서 빵을 사 먹기로 하였다. 세간살이 없이 텅 빈 집을 나와 근처 마트로 가는 길은 잘 단장되어 있고 근처에는 드넓은 잔디밭이 있어 몇몇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마트에서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둑하였고 도착 첫날부터 가족을 편하게 건사하지 못한 내 마음도 어두워졌다.


거실 바닥에 앉아 신문지를 펼쳐놓고 미국에서의 첫 식사로 빵과 우유를 먹었으나 한국 빵보다 많이 달아 입에 맞지 않았다. 평소 빵을 좋아하여 학창 시절 '빵순이'라는 별명이 있었다던 아내도 많이 먹지 못했다. 밤이 깊어 잠을 자려고 보일러를 켰는데 전기레인지에 이어 보일러마저도 작동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준비해 온 침낭에 누워 주린 배와 추위를 참아내며 잠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웅크리고 누워있는 아내에게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여보! 앞으로의 타국살이가 힘들 수도 있지만, 어렵게 주어진 기회인데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자. 근데 자기 빵순이가 맞아? 빵을 잘 못 먹던데? 우리는 한국인이 맞나 봐."  아내는 피식 웃었고, 그렇게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걱정과 기대가 어우러지는 첫날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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