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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Oct 06. 2023

샌디에이고의 추억(2)

샌디에이고에 도착한 다음 날이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 하면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이 생각나지만  곳은 사시사철 따듯한 날씨를 유지다. 이 날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고 비가 가져다주는 을씨년스러움에 쓸쓸한 마음만 가득했다. 한국에서는 울려 퍼지는 캐럴의 음률에 들뜬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텐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국땅에서 캐럴대신 어두컴컴한 공기를 뚫고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인생에서 가장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본격적으로 전기, TV, 전화 등 현지 살림에 필요한 기반을 갖추어 나갔다. 아내와 함께 운전면허 시험을 치러 운전면허증도 취득했다. 하지만 내 집 장만 전에는 차를 사지 않겠다는 생각에 결혼 전 취득했던 운전면허증은 장롱에 고이 모셔져 있었고, 미국에서는 차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는 말에 부랴부랴 운전연수를 받고 이곳에 온지라 운전에는 영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등하교시키고 마트에 다녀오거나 교회에 출석하는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당장 운전이 필요하였고,  아무리 운전에 자신이 없어도 이를 악물고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휴일이나 주말이 되면 디즈니랜드, 레고랜드, 씨월드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들이 집에서 멀지 않아 다녀올 법도 한데, 운전이 서툴러 '방콕'하며 시간을 보내 아내나 아이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큰 아이는 한국 학교와 같은 학년에 입학하여 수업을 받았는데 영어도 익숙하지 않고 친구도 없어 가족 중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와 큰 아이는 머리를 맞대고 낑낑대며 학교에서 받아온 과제를 하였다. 3개월 정도는 이러한 험난한 여정이 계속되었다.


생활의 기반이 잡히고, 큰 아이와의 여정이 마무리되고, 나의 학교 생활도 익숙해지니 조금씩 여유가 생겨났다. 이러한 여유는 정해진 스케줄을 차질 없이 수행하는 것에만 집중하던 우리 부부에게 잠깐씩 숨을 돌릴 수 시간들을 선물했다. 아이들 등교를 시키고 아내와 잠깐 짬을 내어 근처의 도넛가게에서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커피와 함께 갓 구운 도넛을 앞에 놓고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특히 좋았다.


여유도 좀 생기고 운전도 익숙해졌다 싶어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였다. 신비하게 생긴 붉은색 바위들이 산을 이루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세도나'를 목적지로 삼 자동차에 내비게이션도 없었던 시절이라 지도를 가지고 도상훈련을 여러 번 실시했다. 


여행을 시작하는 날도 여전히 날씨가 좋았다. 아침 일찍 즐거운 마음으로 세도나를 향해 출발하였고 도상훈련을 실시한 대로 순조롭게 달려 나갔다. 별 변수 없이 이대로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이른 오후에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의 멋진 식당에서 오랜만에 근사한 외식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멕시코가 가까운 지역을 지날 즈음 검문소가 하나 있었고 아시아 인종인 군인 한 명이 우리 차를 세웠다. 운전면허증을 보여 주었는데도 학교와 연결하여 재학 중인지 확인해보아야 한다며 1시간을 넘게 기다리게 했다. 나는 화가 났고 아내와 아이들은 걱정에 휩싸였다. 보내주기를 기다리다 우리 차를 잡아둔 군인과 잠시  대화를 나눠보니 한국인 2세라 하고 한국어도 곧잘 하였다. 여행이 끝나고 같이 공부하던 동료와 경험담을 나누다 보니 동료는 같은 검문소를 이상 없이 편안하게 지나쳤다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저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같은 한국인인데 너무했다 싶은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세도나에 이르는 높은 절벽과 구불거리는 좁은 길을 고군분투하며 통과하여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검문소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한 탓에 예상을 한참 벗어난 깜깜한 저녁이 되어 버렸다. 즐겁게 출발한 아침과는 다르게 온 가족이 파김치가 되어 움직이기 어려웠다. 외식을 포기하고 카운터를 통해 피자를 배달받아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다행히 다음 날은 날씨도 청명했고 명상을 위해 찾는 미국인이 많다는 신비스럽고 광활한 풍경을 즐겁게 돌아볼 수 있었다. 물론 어제의 부족한 저녁을 만회하기 위해 계획했던 근사한 식당에서의  식사도 행복하게 즐길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 멀리 보이는 산과 구름에 연결된 기나길고 곧은 도로를 아내와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하염없이 달렸다. 맑고 밝던 날씨가 어느 순간 어두워지며 눈발이 날다.  샌디에이고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눈대신 비를 보아서인지, 날리는 눈발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잠깐 차를 세우고 멀리 보이는 산, 곧은 도로, 굵어지는 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때의 사진 속에는 여행의 즐거움과 피곤함을 미소에 살짝 담은 젊은 아내, 어린아이들이 있고, 지금 여기에는 그때의  추억을 기억 저편에 가진 나이 먹은 아내와 다 성장한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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