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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Oct 11. 2023

샌디에이고의 추억(3)

시간은 시냇물이 이끼 낀 돌 위를 흐르듯 계속 러갔다. 같은 물인 것 같지만 또 다른 물이 듯, 같은 날인 것 같지만 어제였고 내일이다. 샌디에이고에서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 한국으로의 귀국일자가 다가왔다.


일상 속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각각 중학교와 초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가보지 못하던 디즈니랜드, 레고랜드, 씨월드, 동물원 등을 돌아보았다. 미국을 떠나기 전 보스턴에 살고 계시는 아내의 외삼촌도 찾아뵈었고, 마침 샌디에이고에서 거행된 아내의 외사촌 결혼식 참석하 미국 결혼식 문화 체험해 보았다.


내가 학교에 갈 때는 아이들의 등하교에 차가 필요하여 학교에서 운영하는 스쿨버스를 주로 이용하였다. 강의들 사이 빈 시간 점심식사를 위해 학교의 식당을 가끔 이용하였다. 외국인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나 홀로 앉아 즐기는 점심도 제법 괜찮았다. 주로 즐기던 음식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수프와 야채샐러드였다. 요즈음도 뜬금없이 그때의 생동감  넘치던 분위기와 맛있게 먹었던 음식 맛이 연결되어 떠오르곤 한다.


학교 일정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향하였다. 가끔 국인 학생의 초대에 응하거나, 한국인 학생의 모임에 참석하여 저녁을 같이 하기도 하였지만,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이 한국에서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 직장에서 근무할 때는 거의 매일 야근이거나 저녁약속이 있고 주말에는 피곤하여 누울 자리만 찾느라 식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타국에서의 학업생활은 아내, 아이들을 향한 그간 함께함의 부족함에 대한 사죄요, 보답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었다. 


저녁 6시 정도만 되면 기거하던 주택단지 주변이 칠흑과 같이 깜깜해지고, 오가는 사람이 없다. 저녁에는 할 일이 별로 없어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김치전 또는 계란말이와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아내와 함께 TV에서 방영되는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귀국날짜가 다가오니 슬며시 한국의 저녁 풍경이 그리워다.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과 함께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놓고 왁자지껄 웃으며 대화하던 생각이 수시로 떠올랐다. 그즈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엄마와 아이들이 미국에 남는 일이 허다했고, 주변에서도 아내에게 권하였던 모양이나 아내도 한국이 그립고 가족은 함께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 귀국을 고대했다.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등교시키기 위해  언덕길을 오르면 차창 앞에 펼쳐지는, 햇빛을 잔뜩 머금 커다랗고 새하얀 구름덩이를 보며 "아~, 아름답다"를 외치던 시간들이 구름처럼 흘러갔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자투리 시간에 아내와 마주 앉아 청명한 햇빛과 포근한 바람을 듬뿍 받으며, 커피와 도넛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던 평화로운 시간들이 바람결에 사라져 갔다. 해 질 녘, 불그스름한 햇빛에 푹 잠겨 아내와 손잡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더불어 잘 정돈된 집 주변길을 따라 걷던 소소한 즐거움이 사라지는 햇빛과 함께 흐려져 갔다.


LA를 출발하여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벅꾸벅 졸다가 눈을 떠보니 장시간 비행에 지쳐 가족들이 잠들어 있다. 수업 수강과 가족 돌봄을 동시에 수행하느라 약간의 힘듦과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한국 출발 전 세웠던 목표를 모두 이루고 다시 새로운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행복했다. 옆자리에 앉아 담요를 덮고 잠이든 아내의 담요를 다시 추슬러 줬다. 


차가운 바람이 살을 에이던 어느 해 겨울, 따듯한 디에이고로부터 추억을 듬뿍 담은 한 가족이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왔고, 뒤돌아 보니 돌아온 지 딱 20년이 다.  동이 트고 있는 새벽, 눈이 떠져 옆을 보니 20년 뒤의 아내가 뒤척이다 이불 밖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어 있다. 이불을 다시 덮어주며 아내를 향해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는다. "여보, 세월이 어느새 흘러 우리도 이제 늙어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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