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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Dec 06. 2024

목포는 추억이다

세 번째 목포를 찾았다. 이제 늦둥이 아들 수능과 수시가 끝난 친한 친구와 따님을 잃고 2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신 권사님과 셋이서 찾은 목포였다.


먼저 여행 가시고 싶다고 말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바람 쐬고 싶으시다고 어디든 가자고 말이다. 나와 친구를 유독 예뻐해주시는 권사님은 특별한 분이다. 권사님은 연세답지 않게 지적이시고 유머 감각, 패션 감각이 모두 뛰어나신 데다 믿음과 인격과 교양과 인정을 두루 갖추시고 자기 관리까지 철저하다. 친구와 내가 교회에서 아주 존경하면서도 세대를 뛰어넘는 친구같이 서스름 없는 사이였다.


애교 많은 친구에겐 볼수록 매력있다며 '볼매'라고 부르시고 내겐 맑은 사람이라며 내 예명인 '이슬'이 잘 어울린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년에 칠순이 되시는 권사님의 막내 동생이 우리보다 몇 살 더 위라고 해서 그런지 나이 차이 있는 맏언니 같은 푸근함과 친근감이 있다.


슬픔을 겪으신 후 우린 더 가까워졌다.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마음을 여실 때까지 잠잠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가 와서 감사했다. 2년 만에 외출을 나오셔서 함께 하신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기뻤다. 비록 아직 그 깊은 애통함을 모두 헤아릴 순 없지만 그럼에도 작은 위로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번 목포는 1박 2일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여서 기대가 되었다. 차가 없이 다닐 만한 곳을 찾다보니 따뜻하면서도 작지만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은 목포가 생각나서 다시 잡은 일정이었다.


첫 번째 목포는 네 자매가 다녀온 정겨운 여행이었고, 두 번째 목포는 친구들과 6월에 신안 퍼플섬까지 들어가서 라벤다를 맘껏 누린 화려한 여행이었고, 세 번째 목포는 그야말로 편안히 쉬다가 온 잔잔한 여행이었다.


목포역 근처 우인 호텔에 숙소를 잡아 짐을 맡기고 먹갈치와 고등어, 조기 등 모둠 생선으로 첫 식사를 했다. 바닷가라 그런지 신선한 생선구이와 정갈한 밑반찬들이 입맛을 돋구었다.


케이블카 근처 봄날 카페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봄날 카페는 목포에 올 때마다 들리는 곳인데 여름엔 수국이 가을엔 국화가 초겨울엔 홍가시와 허브가 입구를 밝혀주고 봄날처럼 따뜻한 햇빛이 들어 아늑하고 환한 데다 커피 맛과 향이 좋은 카페이다.


북항 케이블카는 최장 길이를 자랑하며 유달산과 바다를 함께 볼 수 있어 산책 하기 좋은 곳이다. 도하도에서 내려 숲속 산책로를 걷다 보면 판옥선을 본따 만든 벽돌색 고하도 전망대가 나온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긴 해안 산책로가 펼쳐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코스여도 매번 다른 사람들이라 기분이 다르다. 해안길을 산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날씨가 마치 봄날 같았다. 12월 초겨울에 14도라니 믿기지 않을 만큼 포근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산책하기 적합했다.


목포 대교 사이를 왕래하는 커다란 유람선,  바다 위를 연신 가르는 케이블카, 높고 청명한 파란 하늘, 옥빛 망망대해까지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고 하셨다. 넓고 깊은 바다 앞에서 인간은 작은 미물과도 같다. 자연이 선사한 바닷길 산책로를 셋은 같은 마음으로 조용히 걸었다. 다시 올라와서 유달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밀조밀한 목포 시내와 항구는 참 정감 있고, 유달산은 우람한 바위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목포 대교가 바라다 보이는 스카이워크로 갔다. 목포는 콜택시가 잘 되어있어 어디서든 부르면 1~2분 안에 도착한다. 대부분 근거리라 택시 요금 부담도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핫하다는 대반동에 위치한 스카이워크는 지난 번 왔을 때보다 더 확장되어 근사한 전망대로 변해 있었다. 잔잔한 해변길을 따라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시 산책했다. 마침 노을이 지고 있어 바다 앞의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신발을 벗고 걷는 사람들,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과 연인들, 바다 앞에 서면 누구나 그렇 듯이 탄성을 지르며 자기 방식대로 즐긴다. 우린 그저 잠시 멍 때리며 한참을 앉아 노을을 감상했다.


점점 빠알갛게 변하는 해를 옅은 구름이 그 앞으로 지나면서 구름에 가렸다가 다시 해가 나타났다. 잠시 후 옆에 있던 구름도 일직선으로 흐르더니 다시 해를 가리면서 지나가기를 반복하며 장관을 연출했다. 영상으로 찍어두어 나중에 보니 흥분한 세 사람의 목소리까지 녹음되어 보는 재미보다 듣는 재미가 더 컸다. 바라보기만 해도 그저 힐링이고 여행의 묘미를 더해 주는 것이 자연이다.


저녁이면 아름다운 불빛으로 가득한 목포 대교를 뒤로 하고 간단히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푹 자고 일어난 다음 날은 숙소에서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가볍게 산책을 하러 갓바위로 갔다. 갓바위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매우 신기해 한다. 영산강 하구에 자연적 풍화작용으로 생긴 갓을 쓴 모양의 한 쌍의 바위가 특별하긴 하다. 윤슬에 반짝거리는 바다 물결이 아름다운 아침이지만 저녁 노을빛을 받으면 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근대 역사관은 올 때마다 휴관이라 관람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번엔 역사 전시물들을 제대로 보았다. 1관은 1910년 지어진 일본 영사관으로 현재 보수 중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르네상스 건물 뒷편에 주민들을 동원해 파놓은 땅굴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태평양 전쟁 때 방공호로 쓰인 곳이라니 역사적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2관은 1920년에 지어져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쓰인 건물로 일본의 경제 독점이 본격화 되었던 시점이다. 일제가 농업 수탈을 위한 용도로 활용하다가 나중엔 금융기관으로 쓰면서 주민들의 노동력과 재산을 탈취해 갔다. 1926년 의열단의 나석주 애국지사가 폭탄을 던져 민족정신을 고취한 역사적 상징이 남다른 곳이다.


마지막 여행 마무리는 전통 카페와 한정식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열차에 오르기 전 한정식 집에서 식사를 했다. 권사님께서 사주신 식사였다. 숙소와 기차 비용 등을 우리 둘이 감당하자 고급진 식사를 대접해주셨다. 회에 전복에 삼합에 게장에 전어초무침까지 한상이 거하게 차려졌다. 진솔하게 나눈 대화와 푸짐한 식사 자리는 우리를 더 친밀하게 만들었다.


모처럼 만의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뿌듯했다. 친구와 권사님 덕분에 잊지 못할 여행이 되어 더 특별함을 주는 목포로 다시 한번 가슴속에 새겨졌다. 목포는 추억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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