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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Dec 02. 2024

남편과 나의 교집합

남편과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난 털털 소탈한 반면 남편은 꼼꼼 철저한 성격이다. 남편은 A형 같은 O형이고, 난 O형 같은 A형이라 반대로 아는 지인들이 많다.


빈틈없이 일을 잘 해내는 남편의 손재주 덕분에 우리집에선 김가이버, 아이들에겐 알뜰신잡, 우리 형제들에겐 이모님으로 부른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박학다식하고 꼼꼼한 남편과 덜렁거리는 난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협업이 잘 된다. 일단 내가 일을 벌여놓으면 수습은 남편 몫이다. 군말없이 처리해 놓는 남편을 믿는 덕분에 일을 잘 저지르는 편이다.


하지만 교집합도 많다. 먼저는 차분한 성격이다. 남편은 절대 산만하지 않다. 내가 급한 일이 생겨 허둥지둥거릴 때도 하나씩 풀어가게 한다. 남편과 다르긴 해도 나 역시 크게 산만하진 않다. 빨리빨리와 급한 성격 때문에 실수도 잦지만 기본 성향은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런 면에서 남편과 난 잘 맞는다.


두 번째 교집합은 너그러움이다. 남편은 화를 내지 않는다. 아이들을 키울 때 가끔은 큰소리로 야단치던 나와 달리 한번도 크게 소리친 적이 없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아빠였다. 내겐 가끔씩 조근조근 잔소리를 하긴 해도 큰소리로 화를 내거나 싸워본 적은 없다.


잔소리의 대부분은 상해서 버려지는 야채와 음식들 때문이다. 많이 하지 말고 그때그때 해먹자는 남편과 쟁여두어야 맘이 편한 나로 인해 잔소리를 듣는 불협화음이 잦다. 특히 명퇴하고 시간이 많이 남으면서 주방일을  잦ㄷㆍ 하다보니 더 심해졌다. 예전엔 그렇게 듣기 싫었던 잔소리가 이젠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가고 '또 시작이네' 하며 웃고 지나간다. 아들들이 독립하면서 주방 일이 줄다보니 나도 쟁여두는 습관을 많이 고쳤다. 지금은 남편 말이 옳다는 걸 인정하며 살고 있다.


우리 부부는 주변에서 갈등을 겪는 이들을 중재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을 많이 하는 편이다. 문제가 있을 때 우리를 찾는 이들이 많은 걸 보면 남편과 나의 비교적 온화한 성품 덕분인 것 같다.


세 번째는 나누고 베푸는 걸 좋아한다. 남편은 손재주가 뛰어나서 명퇴하고 1년을 쉬는 동안 텃밭을 가꾸면서 수확한 농작물을 주변에 나눠주었다. 정성을 들여 키운 수확물은 작지만 기쁨을 주고 받다.


어느 날은 유튜브를 보고 뜨게질을 해서 만든 핸드폰 가방을 어머님과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한 적도 있다. 치매가 있으신 엄마에게 뜨게질이 도움이 될까 해서 사둔 뜨게실을 보고 재미삼아 해보더니 할만하다며 가방 하나를 뚝딱 만들었다. 점점 실력도 늘었다. 내게 만들어준 청색 호보백은 여름에 들고 나가기만 하면 다들 예쁘다며 남편의 손재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등은 물론이고 비데 설치, 수전 교체, 정수기 위치 변경 등 뭐든 잘 고치는 남편은 여기저기 필요로 하는 가족들의 손발이 되어준다.


최근엔 성경책 리폼으로 주변 사람들을 또한번 놀라게 했다. 가죽이 벗겨나가서 지저분해진 성경책의 지퍼 부분을 뜯어내어 리폼지로 근사하게 만들어준 것을 보고 몇몇 지인들의 성경책까지 리폼해 주었다. 다들 만족하며 기뻐하는 모습에 흐뭇했다. 손재주는 없는 대신 난 음식이나 작은 선물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작은 거라도 나누고 베풀 때 그 행복이 크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새록새록 느낀다.


부창부수라 했다. 우리 부부의 삶의 태도와 성격은 서로 닮았다. 전형적인 I와 T의 남편과 전형적인 E와 F의 내가 만나서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교집합이 있고 협업이 잘 되어 시너지를 내는 걸 보면 잘 맞는 부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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