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아차' 하는 순간이 생과 사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어느 때처럼 수영을 가려고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그날 김장을 하려고 닦아서 널어둔 김장포를 꺼내 놓고 가려고 주방 앞 베란다로 나갔다. 김장포가 걸려있어 거실 슬리퍼를 신은 채 꺼내려는 순간 중심을 잃었다. 손이 충분히 닿았고 그 정도면 쉽게 내릴 거란 생각이 화근이었다. 내 예상과 달리 중심을 잃은 몸이 '어어' 하는 사이에 바닥으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세게 찧고 말았다.
뭔가라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는지는 몰라도 엉덩이가 먼저 닿고 머리쪽이 부딪혔다. 정신을 잃는 줄 알았다. 아찔했다. 겨우 앉아서 띵해진 머리를 한참동안 부여잡고 일어나지 못했다. 상태를 살피느라 머리를 만져보았더니 다행히 찢어진 데는 없었지만 벌써 볼록한 혹이 만져졌다.
'괜찮겠지. 괜찮겠지.' 혼자 한참을 되뇌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혹시나 중심을 못잡는 건 아닌지 머리가 어지럽진 않은지 살폈다. 엉덩이와 부딪힌 머리쪽이 아픈 것 외엔 다른 증상은 없는 듯했다.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자 놀라서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듣고는 그나마 안심하는 눈치였다. 남편이 올 때까지 머리에 얼음 찜질을 하고 누워있었다. 뇌진탕 검색을 하니 구토나 어지럼증 증상이 없으면 괜찮다고 해서 일단 한시름 놓았다. 한 시간 정도 얼음 찜질을 하고 누워있다가 다시 왼쪽 부위 머리를 만져보니 누르면 아프고 그쪽으론 눕지도 못할 정도였다.
남편이 오고 나서 뭐가 급해서 서둘렀냐 하고 한달음에 달려온 언니들은 조심하지 이 사달이 났냐며 병원부터 가라고 난리였다. 병원 갈 정도는 아니어서 일단 언니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김장을 끝냈다. 남편도 평소보다 더 많은 애를 썼다. 다른 증상은 없는지 계속 물으며 나보다 더 안절부절하던 언니들이 고마웠다. 천만다행이라며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다음 날 일어나니 전날은 멀쩡하던 목뒤가 뻐근하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갈비뼈 부근도 심하진 않지만 아파왔다. 근육이 놀란 정도인지 목에 이상이 있는 건지 몰라 일찍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이상은 없다고 했다. 목 디스크가 약간 있어서 더 아팠을 거라고 주사 맞고 물리치료를 하고 가라고 했다. 오후쯤 되니 한결 나아졌다.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머리를 세게 부딪혔거나 모서리 부분에 부딪혔다면 어땠을지 말이다. 언니 친구가 젖은 낙엽을 밟고 넘어져 뼈가 골절되면서 수술하고 통기브스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지 얼마 안 된 터였다.
초겨울답지 않던 포근한 날씨에 갑작스런 첫눈이 그것도 폭설로 내리면서 교통사고와 블랙아이스 등의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우리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계획한다고 마음 대로 되지 않는 인생일 뿐더러 '앗차' 하는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삶 앞에서 아등바등 살지도 말고 하루하루 평온함에 감사하라는 사실을 또다시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