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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Dec 16. 2024

열흘 간의 광주. 그 피흘림

ㅡ소년이 온다ㅡ



우리나라에도 노벨 문학상 작가가 탄생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채식주의자> 때부터 외국에서 더 주목받고 상을 받아온 한강 작가였다. 그녀의 독특한 필체와 문학성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최초로 한국 노벨 문학상까지 예측한 사람들은 없어 더 놀랍고 뜻깊으며 우리 국민에게 자부심을 선물했다.


작가님의 국내 인터뷰와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을 모두 들었다. 조근조근하며 차분한 어조로 일관성 있게 말하는 한강 작가는 단아하고 지적이면서도 우아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에 지금의 삶과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라며 현재 구상 중인 책을 완성해 나갈 거라며 소신 있게 말했다.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크실 것 같았다. 전세계의 독자들이 생긴 셈이니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마음의 부담이 크시겠지만 작은 일로 평정심을 잃거나 좌지우지될 분 같진 않아서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워낙 이슈가 됐던 <채식주의자> 를 읽었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소년이 온다> 는 아프고 참담한 소설이었다. 너라는 2인칭 화자의 기법으로 시작해 친구 정대를 찾는 동호 이야기, 죽은 정대의 영혼이 자신의 주검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하는 이야기, 고문 후유증으로 살아있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어 결국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 선택을 해야 한 진수 이야기, 7대의 뺨을 맞으며 취조 당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갖고 있는 은숙. 증언을 하기로 한 선주 등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그 자리에서 끔찍하고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목도했을 1980년 5월 열흘 동안의 광주 시민들의 모습과 마음을 그려낸 작가님의 소설을 읽는 동안 그저 탄식이 흘러나오고 가슴이 저려왔다.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화려한 휴가. 26년. 택시 운전사 등의 영화에서도 다뤄진 내용이었지만 영화에선 담을 수 없는 세밀한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처연한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제 아픔이 치유되고 유공자로 지정되어 그들의 명예가 회복되었다고 안일하게만 생각했다. 광주 항쟁의 기록물이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우리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의의만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헛되게 스러져간 죽음, 이유도 없이 곤봉과 총알을 맞으며 주검으로 쌓여간 그 비인간적이고 공포스럽던 현장과 평범한 시민들을 간과했다. 단지 광주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당한 그들의 고통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죄스러웠다.


게다가 전시상황도 아닌 우리 군에 의한 학살이었다는 사실이 극명한 데도 명령을 내린 군부 세력이나 그 명령을 받고는 아무 분별력 없이 잔인하게 수행하며 민간인을 학살한 집단들이 제대로 된 형벌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가 솟구친다. 천인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총에 맞은 친구를 찾아헤매고 시신 수습을 돕던 15살 중학생 동호와 정대가 무슨 죄가 있고, 민간인들에게 행한 진압군들의 악행은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 목적을 위해선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짓밟힐 수 있는지, 폭력 앞에선 인간이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한지 보여주었다. 악행한 이들은 끝까지 죄의 단죄를 받지도 사과 받지도 못했다. 도청을 지키며 끝까지 항쟁한 이들에게 수많은 총알을 남발한 그들의 만행은 절대로 용서받아서는 안 된다.


마지막에 동호 어머님의 비통함을 잊을 수 없다. 웃으며 나간 아들이 주검이 되어 돌아왔으니 평생 그 한을 어찌 안고 살 수 있을까. 자식을 잃은 어미의 고통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과거가 될 수 없다. 동호 형의 말도 잊히지 않는다. 동생이 총을 맞고 단번에 즉사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총을 맞고도 살아있어 확인 사살을 당해 두개골에 구멍이 나있는 험한 시신이 아닌 그나마 깨끗한 시신으로 남아있어서 다행이라니...


헛된 죽음이 아닌 것을 밝히고 더이상 동생을 모독할 수 없도록 글을 써달라고 동호 형은 간곡히 부탁했다. 여전히 공산 폭도들의 반란이라고 믿고 있는 무지한 자들에게서 진실을 알려 달라는 형의 말대로 작가님은 모든 사료와 영상을 꼼꼼히 살피셨다. 너무 몰두한 나머지 마치 처참했던 광주 그 현장에 있던 것처럼 느한동안 한 무리의 군인들에게 짓밟혀 숨을 쉴 수 없는 악몽까지 시달리면서 써내려간 소설이었다.


여기엔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그들의 피흘림과 되풀이되어선 안 되는 아픈 역사와 숨길 수 없는 진실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 진리는 승리한다. 지금의 혼란한 시국도 진리가 반드시 승리해 안정된 나라를 되찾길 바랄 뿐이다. 어떻게 지켜낸 민주주의인데 아직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계엄령을 남발한 이 시국이 개탄스럽다.


다시는 소설속 소년처럼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스러져가서 무덤 사이를 걷고 있는 비참한 소년이 아닌 미래의 꿈을 펼치고 열정 가득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아름답고 당당한 소년으로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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