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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사랑

by o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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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꽃이 피었다. 불모지 땅에 어느 날 날아온 이름 모를 씨앗이 생명을 움트듯 그렇게 내안에서도 신비하게 생명이 자랐을 때 그 기쁨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자연의 숨결 받고 하루하루 새롭게 움튼 새싹들이 뿌리를 내리듯 태동을 느끼고 열 달 동안 교감하며 출산의 산고로 태어났을 땐 감격과 신비였다.


자식이란 예쁜 꽃이 움트고 열매 맺을 만큼 자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사랑과 헌신이 없었다면 그 길을 갈 수 없었고 정성과 인내와 눈물과 애잔함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서툰 사랑도 시작 됐다. 처음 해본 사랑이고 내 것을 내어줘 본 적이 없기에 나를 희생할 줄도 몰랐다. 아직은 나만 소중해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방법도 몰랐다. 모든 게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산고의 고통으로 태어나 내 눈앞에 있는 신비한 생명체라는 사실만으로 그 서툴고 낯선 사랑은 시작 됐다.


할수록 신기하게 늘었고 볼수록 사랑스러워져 갔다. 밤 잠 못 자며 키워낸 아이가 토실토실 살쪄갈 때면 가슴 벅차도록 감격했고, 아장아장 걸을 때면 다 자란 것처럼 대견했다. 옹알이 하다가 말문이 트이고 내 눈을 바라보며 엄마라고 부를 때의 경이함도 정체모를 언어로 말하는 것을 알아듣는 신기함도 경험했다. 나만 바라보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바라볼 땐 그저 사랑스럽고 심쿵하며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그렇게 사랑으로 키워내며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 어느 덧 30년이다.


어느새 자라고 자라서 학교에 입학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해 사회인이 되어 지금은 내 옆을 든든히 지키는 장성한 아들이 되었다. 바르고 선하고 책임감 있는 아들들로 잘 자라주어 너무나 고맙다. 서툰 사랑의 결실이다.


어느 덧 사회인이 된 아이들이 회사 앞으로 독립을 해 가끔 너무 많이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하릴없이 빈둥거릴 때도 있었다. 빈 둥지 증후군을 앓는 엄마처럼 공허하고 쓸쓸해져 가끔 먼 산도 바라보았다. 인생의 봄날도 지나가고 어느새 뜨거웠던 여름날도 지나가고 쓸쓸한 가을 정취도 보내고 황량한 겨울의 빈 가슴을 느낄 때도 찾아왔다.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살아온 지난날들도 있었고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아

가슴이 답답할 때도 있었다.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시간은 어느새 이만큼 와 있었다.


서툰 사랑으로 시작된 아이들이 장성한 꽃이 되어 사회로 진출해 이젠 어엿한 가장이 된 작은아들과 내년이면 결혼을 앞둔 큰아들로 인해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


엄마로서의 자리. 아내로서의 자리. 딸과 며느리로서의 자리. 이제껏 놓지 않던 일의 자리만이 아닌 그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해 보는 도전의 자리를 남겨두었다. 이제 불혹도 넘기고 지천명의 나이도 어느 덧 중반으로 접어든 내가 오래 낭비하고 게으름 피며 버려졌던 시간들을 다시 주워 모아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가끔은 뒤바뀌는 계절의 길목에서 가기 싫은 계절과 오고 있는 계절이 서로 싸우는 걸 본다. 봄의 길목에선 꽃샘추위가 가을의 길목에선 늦더위가 겨울의 길목에선 떨구지 못한 나뭇잎들이 안간힘 쓰며 그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한다.


내어주기도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자연의 이치와 순리가 그러하듯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 이제 바쁘게 살던 내 지난날의 시간들은 이제 가장이 되는 아들들에게 고스란히 자리를 내어주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 아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응원한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새로운 꽃을 피워볼 것이다.


서툰 사랑이 아닌 노련한 사랑이 된 지금까지도 두 아이들에 대한 내 마음은 그 때와 변함없다. 엄마란 꽃이 시들고 초라해져 다 질 때까지 그 사랑은 계속 될 것이다. 자식은 사랑이고 태의 열매이고 내 소중한 분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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