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때면 늘 이모네 가족과 여름휴가를 간다. 올해 여름휴가는 속초였다. 속초 바다를 보고 수영을 하고 펜션에서 민준이 형준이와 2박3일 여행을 가기 전부터 설레었다. 민준이 형준이가 남자 형제라 여행을 갈 때면 항상 나를 데리고 가주신다. 지인이는 여자이고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나만 누리는 특권이다. 아빠의 사업으로 내가 어릴 때는 늘 바쁘셔서 그 땐 경제적인 이유가 아닌 마음의 여유가 없어 우린 제대로 된 가족 여행을 간 기억이 별로 없다. 내가 간 여행의 대부분은 이모네 가족과 함께여서 그런지 이모네 가족과 더 익숙하고 친근하다. 지금은 엄마까지 일 하시니 여행은 꿈도 못 꾼다.
차가 막힐까봐 아침 일찍 출발해 민준이와 나, 형준이는 차안에서 끝말잇기를 하면서 꿀밤도 때리고 휴게소에 들려 간식 사먹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차안에서 두런두런 대화 나누는 이모와 이모부는 참 잘 어울린다. 온화한 인상도 부드러운 목소리도 비슷하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오래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 아빠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말이 별로 없으신 아빠와 흥분 잘 하시는 엄마의 두 분 대화는 딱딱한 말투에 사무적이다. 나에게 하듯 아빠에게도 늘 비난하기 바쁘고 그런 엄마에게 아빠께서도 체념하거나 벽을 치신 것 같다.
속초에 도착했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모래사장에 앉아 모래성을 쌓고 바다에 발을 담그고 파도를 피해 도망을 다녔다. 모래성에 나무젓가락을 꽂아 넘어뜨리는 게임에선 내가 민준이, 형준이, 이모부, 이모까지 이기고 끝까지 살아남아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민준이를 이기는 일은 거의 없으니 기분이 최고였다. 모래밭에 털썩 주저앉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시는 두 분이 참 좋다.
우리가 기다렸던 수영은 숙소에 가서 하기로 하고 회를 먹으러 갔다. 광어를 시켰는데 맛있는 음식이 하나둘씩 차려지더니 구워진 생선이 나오자 이모부는 먹기 좋게 뼈를 다 발라서 우리 접시에 놓아주셨다. 가시가 없으니 먹기 좋았고 꽁치와 자반은 고소했다. 잠시 뒤에 크고 근사한 접시에 회가 나왔는데 광어 머리가 같이 나와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나와 민준이는 ‘와우!’ 하며 신기하다고 했지만 형준이는
“징그러워요! 아빠, 치워주세요! 못 먹겠어요!”
하며 울상을 지었다. 이모부가 깻잎으로 광어 머리 위에 덮어주자 이번엔 깻잎까지 같이 팔딱거려 한바탕 웃었다.
“안 되겠어요. 치워달라고 해요.”
이모도 여전히 움직이는 광어가 신경 쓰여 잘 먹지 못하자 이모부는 회를 접시에 덜어놓고 광어 머리를 치우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싱싱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나 본데 광어의 쫄깃함을 좋아하던 나까지도 비위가 상했다. 내가 좋아하는 낙지 탕탕 까지 만족한 점심이었다. 우리에게 골고루 한 번씩 상추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시는 이모부의 자상함, 흘릴세라 연신 입을 닦아주시는 이모의 따뜻함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느끼면서 괜히머쓱했다.
우리 아빠는 일만 열심히 하시는 전형적인 예전 가부장적 가장들의 모습이다. 집안일은 청소기 돌리시는 정도로 도와주시지만 요리는 아예 못하시고 겨우 라면만 끓이신다. 남자는 씩씩하고 강하게 키워야 된다면서 내겐 전혀 곁을 안주시고 말투와 행동도 명령조에 유독 나한테만 무뚝뚝하시다. 여동생 지인이는 어릴 때부터 아빠 무릎에서 떠나지 않았고 아빠를 장난감 다루듯 하며 응석을 부리고 떼를 써도 야단 한 번 안 치고 다 받아주셨다. 지금 초등학생이 됐는데도 여전히 말이다. 그래서인지 지인이는 버릇없고 제멋대로인데다 4살 차이나는 오빠인 나한테 자주 기어오르는 안하무인인 동생이다. 눈치가 백단인 약은 애라서 아빠가 자기편인 걸 다 아는 거다. 내가 언젠가 지인이에게
“넌 아빠가 안 무서워?”
라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갑자기 눈동자가 커지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왜 무서워? 오빠는 아빠가 무서워? 아니 왜?”
하며 어이없어 했다. 할 말이 없었다.
‘왜 나만 아빠가 무서운지 나도 모르겠다. 나도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났으면 아빠의 관심을 받고 막내였다면 사랑을 받았으려나...’
어렸을 때 감기 몸살로 열나고 아파서 잠 못 자고 있는 지인이를 아빠는 밤새 업고 계신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나도 아프면 아빠가 저렇게 간호해주실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까지 했다. 넓은 아빠의 등과 따뜻한 품은 늘 여동생 차지였다. 나도 넘치게 사랑 받고 싶다고 큰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엄마가 자랄 때에는 할머니께선 딸 낳았다고 서럽고 미모들은 여자라고 차별 받았다는데 나는 아들이라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는 것 같아 억울하다. 아들 아들 하는 집도 있다는데 우리 아빠는 왜 나한테만 냉정하고 엄마는 왜 감정 기복이 심하신가 모르겠다. 화목한 민준이네 가족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철없는 생각이었지만 솔직한 내 마음이다.
펜션에 도착해서는 먼저 체크인을 하고 우린 잽싸게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수영장으로 첨벙 들어갔다. 여름이어도 물은 꽤 차가웠다. 이모부가 튜브에 바람을 넣어주셔서 형준이는 튜브를 타고 놀고 민준이와 나는 물안경을 끼고 수영도 못하면서 잠수에 다이빙에 물싸움에 마냥 신나게 놀았다. 응어리졌던 감정들이 첨벙거리는 물소리에 빠르게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이모와 이모부는 바비큐 준비를 하셨다. 삼겹살과 새우, 소시지와 버섯. 마시멜로까지 근사한 저녁식사였다. 아침은 분명히 이모부표 계란말이에 남은 삼겹살로 끓인 얼큰한 김치찌개일 것이다. 매년 그러하듯 말이다.
야식으로 낮에 사둔 닭 강정을 먹으면서 최근 위생상태가 불량한 닭 강정 사태로 시끄러워 꺼림직 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속초에서 워낙 유명했던 닭 강정이어서 국민들 충격이 몹시 컸다. 고개 숙여 사과하며 일단 조금은 진정이 됐지만 온 국민을 기만했으니 화나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속초에 왔으니 먹어봐야 된다고 하셔서 오면서 들려 사갖고 왔다.
“심기일전하며 새롭게 바뀌겠지!”
이모부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뜻이라 생각하고 저녁을 잔뜩 먹었으면서도 닭 강정은 맛있었다. 역시 모든 치킨은 진리이다. 이모는
“먹는 것 같고 장난치는 사람들은 가만 두면 안 되는데 잠시 영업 정지에 솜방망이 처벌로 벌금 조금 내고 나면 끝이고 버젓이 또 영업을 하니 안 고쳐지는 거야!”
하시면서 혀를 쯧쯧쯧 차셨다. 기생충 알이 검출 된 중국산 김치 수입 금지. 비위생 환경에서 제조된 불량 순대, 저급한 중국산 단무지와 썩은 무로 만든 불량 만두 등 부끄러운 먹거리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놀란 가슴 쓸어 내린지가 언제라고 또 이런 일이 생기냐고 아주 본 떼를 보여줘야 한다며 이모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셨다. 불량 음식 사태는 해마다 한두 번씩은 꼭 터지는 것 같아서 안심할 수 없다. 만든 사람에게 직접 먹게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 날 물놀이를 너무 해서 피곤했는지 금방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은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 전망대에 올라갔다. 아찔했지만 푸른 숲으로 둘러싼 절경이 그림 같았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산을 조금 오를 때 나무에서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자그만 청설모가 눈에 많이 띄였다. 사람들에게 많이 적응했는지 피하지도 않고 과자 부스러기를 쥐고 유인하니 가까이에 와서 받아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고 작은 입으로 잽싸게 과자를 채가서는 나무 사이로 총총 사라지는 앙증맞은 모습이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눈으로도 담고 사진에도 담고 마음에도 담아 돌아오는 차안에서 불현듯 엄마 아빠 지인이 생각이 났다.
‘우리 가족도 같이 여행 하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에는 꼭 같이 오면 좋겠다. 같이 가자고 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