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유토피아
ㅡ'콘크리트 유토피아' 를 보고ㅡ
제목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서울이 아파트 천지인만큼 지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아파트를 그들만의 유토피아로 만들고 싶은 주민들의 바람을 담았지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그런 유토피아는 실패였다. 세상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하며 어느 순간에도 인간성을 상실해서도 안 된다.
영화 시작부터 지진으로 서울 시내 아파트가 전부 무너지고 도시가 초토화 되는 장면은 끔찍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 더 소름이 돋았다. 지진에 대비해 내진 설계를 튼튼히 한다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부실한 게 사실일 테니 말이다. 최근 철근까지 빼먹고 지은 아파트로 온 국민이 분개한 뉴스가 떠올라서 이런 지진 앞에 과연 안전한 아파트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황궁 아파트 두 동만이 멀쩡하게 남아 주민들이 대책 회의에 나선다. 살아남은 자들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그들을 수용할 것인지. 쫒을 것인지. 다수결의 원칙은 주민만 수용하고 지키자는 것이었고 그들은 똘똘 뭉쳐 하나가 됐다. 주인공은 아니러니 하게도 주민을 잔혹하게 살해한 자에서 목숨 걸고 주민을 지키는 자가 된다. 주민이 아니면서도 주민인척 행세하며 피해자의 어머니를 돌보고 그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 서서 생명을 지킨다. 명의만 뺏겼지 자기 아파트라고 생각한 강한 확신 때문인지 죄책감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열의만은 인정한다. 완장이라는 소설에서 완장을 찬 이후 권력이 사람을 변질시키는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한 생명이라도 지키려는 사람들까지 인정사정없이 극한 상황으로 내몰면서도 주민을 보호하고 규칙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정당하다고 말한다. 결국 비인간적인 행동에 절망하며 절규하는 주민을 극단적 선택의 상황까지 몰아부친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했던가. 밖에서는 동사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살아남은 자들을 바퀴벌레로 치부하며 식량원정대가 가져온 음식으로 자축하고 애완견을 잡아 고기 잔치를 벌이면서 노래까지 부르고 축제를 벌이는 그들은 이미 선한 인간의 본성에서 멀어져갔다. 자신들의 행복만 지켜지면 세상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이기심은 인간 본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양심도 없고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자신만 행복하면 된다는 비인간적 비윤리적 태도이다.
곧 최악의 상황에 치달았을 때 그들의 유토피아는 무너진다. 교양을 잃지 않던 부녀회장은 원정대에 나갔다가 희생당한 자신의 아들 앞에서 무너지고 대표는 주민을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을 폭로한 이웃 여자에게 또 다른 보복 살인을 자행하고 아파트로 무기를 들고 난입한 사람들과 싸우면서 그들의 유토피아는 한순간에 점령 당한다. 정의를 끝까지 지키려고 몸부림치던 여주인공은 부상당한 남편과 겨우 빠져나왔지만 결국 목숨을 잃은 남편을 돌무덤에 두고 비통에 잠기면서도 살아남은 또 다른 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처연하게 삶을 이어간다는 결말로 끝이 난다.
이 영화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한다. 안에서는 유토피아 밖에서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이 대비된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묻고 있고 다양한 인간들과 대면한다. 소중한 생명을 지키려는 자. 뺏는 자. 남 탓하는 자. 비열한 자. 단합을 깨트리는 자. 너그러운 자. 헐뜯는 자. 기회주의자. 가식과 위선자 등 우리 삶 곳곳에서도 쉽게 만나는 인간군상이다.
어떤 경우든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소중한 생명은 지켜져야 하며 진실은 왜곡 되지 않고 정의는 실현 되어야 한다고 피력한다. 인간성과 인류애를 잃어서는 안 되지만 극한 상황에 놓였을 때 황궁 아파트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되묻게 되는 결말이 몹시 씁쓸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