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할아버님하고 작은 어머님, 누님께서 먼저 집에 갈 터이니 그리 알라고 하시고 먼저 떠나면서 찾으러 온다고 하셨다. 그러다 시간만 흐르고 세월만 가더니 봄이 찾아왔다. 그 때 우리 일행은 부곡을 떠나 군포에 왔다. 군포에서 어머님은 인근 마을에서 간장 된장을 구해다가 내다 팔아서 우리 4식구를 부양하셨다. 식구가 적은 관계로 먹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던 중 아버님이 환도하셨다가 가족들이 피란길에 있는 것을 알고 찾아오셨다. 군포에서 극적으로 아버님을 만나 고기 국에다 쌀밥을 실컷 먹었다.
아버지께서 면 서기여서 군포 면사무소에 가셔서 쌀을 가지고 오시면서 생활이 넉넉해졌다. 여동생이 고기 국에 너무 과식을 해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보시며 애를 그렇게 먹도록 두었다고 어머님을 야단치셨다. 그동안 얼마나 굶었으면 고기 국에 과식을 했을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버지가 서운했다. 형만 데리고 피란을 가셨다가 이제야 찾아오신 것도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군포에서 화물 열차에 몰래 올라타고 안양까지 왔다. 군인이 문을 열더니 다 내리라고 하여 안양역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금 가양동에서 아버님 친구 분의 도움으로 새벽 1시경에 배를 얻어 타고 행주까지 올 수 있었다. 한강을 건너가다가 들키면 총살을 당하는데 조금 가다보니 경비병이 총을 쏘아대는 것이다.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는데 배 언저리까지 물이 넘실넘실 대서 무서워 죽는 줄만 알았다. 더구나 배 밑창에서는 물이 새 들어와 연신 물을 퍼냈다. 뱃사공은 정말 무서운 분이었다. 소리 내면 배가 뒤집혀진다고 찍소리도 못 내게 하고 엎드려 있으라고 했다.
행주산성 뒤편에 배를 정착하고 바위투성이를 캄캄한 밤에 더듬으며 산기슭까지 닫는 과정에서 여동생이 울어대서 아버지는 면박을 주었다. 날이 밝고 보니 동생이 넘어지면서 얼굴이 바위에 부딪혀 피가 흘러 말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님께서 그런 줄도 모르고 운다고 면박만 주어서 얼마나 아팠겠냐며 위로 하셨다.
행주산성 언덕에 누워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다가 일어나니 아침 10시경이 되었다.
식구들이 걸어서 일산 집에 당도하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집은 불에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부모님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니 너무 기뻤다. 그 날부터 방공호에서 짚을 깔고 그 위에 멍석을 깔고 생활하였다. 그것도 저녁에는 등화관제 때문에 방공호 속에다 등잔불을 켜놓고 생활해야 했다. 모 자리를 해야 하는데 벼 씨가 없다고 아버님께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피난을 떠나기 전 잿더미에 묻고 나갔던 벼 3가마를 생각하시고 꺼내어 벼 씨와 그 중 일부를 절구에 찧어서 생활하였다.
미국과 소련이 휴전 회담을 시작하면서 1953년 7월 27일 드디어 휴전 소식이 들렸다. 길고 고통스러웠던 전쟁이 끝이 난 것이다. 완전히 끝난 건 아니더라도 이제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만족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오신 할아버지 전쟁 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그 뒤로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된 이야기와 증조할아버지의 편애로 상처 받은 이야기 등 어린 시절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일기를 덮고 등화관제가 무엇인지 사전을 찾아보았다. 적의 야간 공습 시, 또는 그런 때에 대비하여 일정한 지역에서 등불을 일정 시간 강제로 제한하는 일이다. 집으로 돌아와도 여전히 안전 위협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집도 길도 도로도 모든 것이 초토화 되었어도 그것을 복구하며 다시 삶을 이어나가는 모습에 사람들의 의지와 끈기는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 당시 남북한 인구 3.000만 명의 절반이 넘는 1.800만 명이 피해를 입었으니 비참한 전쟁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같은 민족끼리 말이다.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의 고통은 또 어떨지 생각해보면 정말 참혹하고 가슴 아픈 전쟁이다.
그 뒤에는 다시 집을 지으시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3년 간의 전쟁 이야기를 책이 아닌 할아버지 일기장에서 보게 될줄은 몰랐다. 가슴이 아프기도 했고 긴장이 되기도 했고 할아버지 가족이 모두 살아남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일기는 오랫동안 내 기억에 잔상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