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낮추지도 못하고 자만하며 남을 높이지도 못하고 자랑을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조금만 잘 돼면 우쭐거리고 과시하고 싶어한다. 자랑을 했을 때 그에 걸맞는 칭찬이 돌아오지 못하면 화를 내거나 서운해한다. 교만은 그래서 경계해야 될 덕목 중 하나이지만 남에 대한 칭찬이 인색한 것도 사실이다.
돈도 안 드는데 서로를 북돋워주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면서 가식적이 아닌 진심어린 칭찬과 격려를 한다면 화기애애하고 더 신뢰를 얻고 좋은 관계나 분위기가 형성될 텐데도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자존감도 높여주고 관계도 좋아지게 만드는 것이 칭찬과 격려인데 생각만큼 쉽지 않은가 보다.
남이 잘 되면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은근히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괜한 말이 아닌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자기가 높아지고 주목 받기를 바란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 이기적인 성품이 내면 안에 있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말하는 선인들은 말을 실천하기 쉽지 않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 는 책과 말이 유명해지면서 칭찬릴레이가 이어진 때도 있지만 본래 마음에선 그 깊숙이에 시기. 질투가 숨어있다. 내가 잘 되면 좋고 자기 과시를 하다가도 남이 잘 되면 자랑도 듣기 싫고 고깝게 생각할 때가 있다.
지인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칭찬하고 축하해주기 보다는 "밥 사!" 나 "한턱 쏴!" 라는 말들을 먼저 한다. 좋은 일이 생겼으니 기쁘게 밥을 살 수 있으나 그 말에 진심어린 축하의 마음보다 가시가 돋쳐있음을 느낄 때면 씁쓸하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올 하반기에 좋은 기회가 생겨 수필집을 출간했다. 평범한 글이지만 25편의 수필이 책으로 인쇄 되어 나왔을 때 어안이 벙벙할 만큼 기쁘고 뿌듯했다.
너무 평범하고 부끄럽고 아직은 미숙한 글이지만 내게 찾아온 좋은 기회를 형제들은 당연히 너무 기뻐해주었다. 출판 기념을 해야 된다며 케익을 사서 촛불을 켜고 내 책을 옆에 두고는 축하해주고 기념 사진까지 찍었다. 와인을 마시며 건배하면서 한마디씩 칭찬을 거들었다.
"대견한 내 동생. 자랑스런 우리 언니. 친구들에게 선물해야지."
등등의 말들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역시 피붙이구나 싶었다.
내게 들어온 30권의 책을 친한 지인에게 선물로 모두 돌렸다. 카톡에 문자가 줄을 이었다. 공감해 주고 축하해 주면서 간단한 감상평을 해주는 지인들이 너무 감사했다.
다만 가장 먼저 축하해주리라 믿고 책을 선물한 지인에게선 말 한마디가 없었다.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모두에게 칭찬과 격려 받기를 원한 건 아니지만 기대 이상인 사람과 기대 이하인 사람을 보면서 의외로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새삼 느꼈었다.
조카들에게 받은 댓글이 너무 기억난다. <미녀들의 수다> 란 글에서 작은 엄마처럼 말에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새기면서 살겠다는 말과 다른 조카는 자신의 SNS에 감상글을 올려주었다. 2년 전 내겐 형님. 조카에겐 엄마를 떠나보내면서 엄마에 대한 자식의 사랑에 대한 부분에서 '우리 엄마도 그랬겠지...' 하는 그리움을 표현하는데 읽으면서 울컥 했다. 작은 엄마의 비밀 일기장을 훔쳐본 기분이라고 표현해주어서 너무 고맙고 대견한 조카들이었다.
책을 사서 말없이 동료들에게 선물한 친구와 육촌 아저씨. 한 권사님 모두 지인에게 선물 하셨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는 너무 감사했다. 사랑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사랑을 받고 나니 더 잘 하고 보답하고 싶다는 열정이 생겼다. 최근 브런치를 열심히 올리는 이유도 같다.
칭찬을 받으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되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누군가 관심 가져주고 희망을 심어주면 힘이 난다. 칭찬 바이러스와 행복 바이러스로 가득 차서 따뜻한 사회가 되기 바란다.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자세도 선한 영향력으로 확산 되고 전염처럼 번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