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ㅡ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ㅡ
<벌거벗은 세계사>는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재미있게 본 편은 영국 엘리자베스1세 여왕 강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버지인 헨리 8세와 어머니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나 많은 인생 역경을 겪은 공주였다. 앤과 결혼하기 위해 카톨릭을 버리고 영국 국교까지 만든 헨리8세는 6번이나 결혼 했던 여성 편력이 심했던 부도덕한 왕이었다.
<천일의 앤>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 헨리의 외도는 많은 여자들을 불행하게 했지만 특히 앤 왕비는 그 최후가 너무 비참했다. 그토록 헨리가 차지하고 싶었던 여자였지만 딸을 낳고 원하던 아들을 얻지 못하자 다시 외도를 일삼고 남동생과 불륜의 누명을 씌워 결국 앤을 처형한다. 아무리 최고의 권력자라 해도 최소한의 인정이나 연민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헨리왕의 무자비함에 화가 났다. 앤 왕비의 여동생이 남겨진 앤의 딸 엘리자베스를 키워 후대 영국 여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 했다.
헨리가 죽은 후 에드워드가 왕이 됐지만 후사 없이 죽어 헨리의 첫 번째 딸 메리1세가 여왕이 되면서 엘리자베스는 견제의 대상이 되어 개신교를 옹호한다는 죄목으로 런던탑에 갇히는 고통까지 당한다. 메리1세 여왕은 국교를 다시 카톨릭으로 개종하면서 개신교도를 화형에 처하는 등 엄청난 핍박으로 피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붙여졌다. 스페인 왕과 국혼을 하고 후사 없이 병으로 죽게 되면서 이복 동생이던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 후부터 영국 역사는 달라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고가 고갈되어 빚에 허덕이던 나라를 준비된 군주답게 하나씩 해결한다. 일단 카톨릭과 개신교의 종교 갈등이 심한 상태에서 두 종교를 모두 포용해 갈등을 줄였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화폐 개혁과 국내 생산과 자원 개발을 추진하며 해결했다. 부군을 원하던 영국 시민에게 잉글랜드가 남편이고 국민이 자식이라며 처녀 여왕의 깨끗한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외교 문제도 잘 이끌어 혼란스러운 영국을 안정화 시킨다. 위험 요소였던 해적들과 손을 잡아 경제와 복잡한 정치 문제까지 해결했다. 주요 항구가 있던 카리브 해에서 보물을 강탈하기 위해 해적이 모이자 그들과 손을 잡는다. 스페인 함대의 공격을 받고 영국함대가 큰 인명 피해를 입어 장군. 해적. 탐험가였던 트레이크와 손을 잡고 스페인 선박을 쳐 스페인 보물을 훔쳐 복수하게 만든다. 이에 항의한 스페인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해적들에게 허가증을 주면서 군의 힘을 키워 위기를 기회로 삼은 현명한 군주였다. 당시 오스만 튀르크를 물리치고 주요 지역을 다 차지한 강력한 스페인 함대에 맞서고 그들을 공격해 이득을 취하려고 약탈을 합법화하고 항해를 시작한다. 항해 중 스페인 선박을 탈취해 많은 보물을 차지했다. 1년7개월 동안 약탈 당한 보물로 화가 난 스페인 국왕에게 보란 듯이 드레이크를 귀족으로 만들어 그를 보호 하기까지 한다. 프랑스와 전쟁 중이어서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스페인에 도발하듯 영국은 독립전쟁 중이던 네덜란드의 독립을 지원했다. 그러자 스페인 국왕은 엘리자베스와 오촌 관계였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를 이용해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암살을 시도했다가 서신이 발각되면서 메리는 감옥에 갇힌다. 엘리자베스를 폐위시키려는 목적이었지만 실패하고 메리는 19년간 갇혀있다가 끔찍하게 처형 당하는 최후를 맞는다. 메리의 죽음을 명분으로 스페인은 영국을 침공하고 여왕은 드레이크에게 해군 부 총사령관직을 주어 칼레 해전에서 함대를 물리친다. 바람의 방향이 도와주어 화공선으로 승리를 거둔 뒤 또 다른 해전에서도 대승한다. 전쟁 전 보병을 데리고 진격을 준비한 엘리자베스 여왕이 갑옷을 두르고 병사들에게 생사를 함께 하겠다고 말한 연설은 틸버리 스피치로 역사에 길이 남았다. 사기가 충전된 영국군의 승리는 식민지 대영제국의 시작을 알리고 스페인의 국력은 약화되는 계기가 된다. 칼레 해전은 영국과 스페인에게 전혀 다른 역사적 의미와 결말을 준 전쟁이라니 참 대비된다.
역경을 넘어서 최고의 군주로 평가된 여왕은 25세의 어린 나이에 45년간 재위하였다. 빈민보호법을 만들고 경제를 안정시키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치며 동인도 회사를 세워 인도 등 동양에 무역과 사업 독점 특허권을 주며 상업을 발전시킨다. 가장 존경받는 절대 군주였고 6개 언어에 통달한 영민한 여왕으로 칭송되며 역사에 길이 남았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영국의 기틀을 마련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일대기는 책 못지않게 흥미진진했으며 군주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워주어 오래간만에 집중해서 세계사 공부가 된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신라 시대에만 여왕이 가능했다. 신라는 골품이라는 신분 제도가 있어 왕의 자녀인 성골만이 왕의 자격을 갖춰 여왕도 가능했다. 선덕 여왕. 진덕 여왕. 진성 여왕 세 여왕이 있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과 가장 비슷하게 지혜로운 여왕은 선덕 여왕이었고 신라를 망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여왕은 진성 여왕이었다. 선덕 여왕은 대신들의 반대에도 김춘추와 김유신에게 외교와 군대를 맡겨 현명한 정치를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결혼도 하지 않아 대를 이을 후사도 없이 신라 여왕으로 뛰어난 진면목을 보였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자장 법사에게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게 해 신라가 가장 꼭대기로 주변 8개 나라를 지배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 신라인들의 자긍심을 갖게 했다. 그밖에도 첨성대를 만들고 진골 출신인 김춘추를 역량 있는 왕으로 만들어 나당 연합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물리치고 그의 아들 문무왕때 한민족 최초로 삼국 통일의 염원을 이루어 민족의 통합과 번영의 계기가 된다. 반면 진성 여왕은 사치가 심하고 귀족들과 연회를 베푸느라 부족한 국고를 위해 세금을 올려 백성들을 힘겹게 했다. 나라의 기강은 헤이해지고 민심을 잃고 결국 후삼국으로 분열되어 마지막 왕인 경순왕 때 천년의 역사 통일 신라가 사라지는 원인을 제공한다.
어떤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백성들의 안위와 나라의 발전을 위하느냐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가 좌우 되며 그 진리는 지금까지도 변함없다.
영국의 기틀이 엘리자베스 여왕에서 비롯 되었듯이 한민족을 이룬 삼국 통일의 기틀은 선덕 여왕에게 비롯 되었다는 점에서 두 여왕의 행보가 비슷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나라의 발전을 위해 애쓰며 예지력과 통찰력으로 나라를 번영케 만든 지혜로운 여왕에 진정한 리더이며 강한 통치자의 모습이 투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