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집단 상담을 다닌 적이 있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팀에 5~6명의 소집단에게 기본적인 인간관계와 상호작용. 자아 성장이 목적인 기초적인 상담이다. 교육청에서 자원봉사자 지원을 받아 소정의 교육을 이수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의정부까지 가서 교육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열정이 컸고 젊었으니 가능했다.
교육이 끝난 뒤에 가까운 중학교에 투입되어 1,2학기 일주일에 한 번 1시간씩 반별로 집단 상담 자원 봉사를 하면서 처음 한 학기를 마쳤을 때 참 뿌듯했다. 학창 시절 생각도 났고 매일 공부하느라 지친 학생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쉼을 얻는 시간이 된 것 같았다. 거창한 상담이 아닌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는 부담 없는 시간이다.
첫 시간엔 '별칭 짓기' 로 시작한다. 자기의 또 다른 이름을 짓고 상담 시간 내내 별칭으로 부른다. ‘이슬’은 내가 사용하는 별칭이다. 아침 구슬이란 이름의 뜻을 생각해 만든 별칭이다. 맑고 순수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이 별칭은 그 후로도 내 예명이 되었다. 내가 만든 시집 이름도 ‘이슬 시집’으로 이름을 붙일 정도로 마음에 든다. 나처럼 이름의 뜻과 비슷한 별칭을 짓는 학생도 있고 자기가 동경하는 이름이나 사이보그나 걸크러쉬 같은 특징을 붙이기도 했다. 이름을 붙인 이유를 각자 소개하며 첫 시간부터 호감과 관심을 유발해 친밀감을 형성한다.
'인생그래프' 를 그리는 시간에선 자신의 어린 시절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을 떠올리며 표시한 점수를 점선 그래프로 연결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서로 발표 할 때 어릴 때 겪은 마음속 상처도 드러나고 좋았던 경험도 듣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친구의 말에 경청하고 공감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나무 위에 표시한 '자신의 위치' 를 통해서는 자존감을 확인한다. 나무 위에 위태롭게 앉아있는 아이. 바닥에서 위를 쳐다보는 아이. 꼭대기에 오르려는 아이 등 다양한 모습은 내면에 자리 잡은 자기 위치를 말해주었다.
집단 상담은 그렇게 학업에 지친 학생들이 잠시 쉬면서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오롯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형성에 도움을 준 작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다.
교육학을 전공해 교육 상담을 배우긴 했지만 집단 상담에서 학생들을 만나 실전에서 경험한 건 처음이었다.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레포를 통한 신뢰 형성이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신뢰를 준 뒤 학생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처음엔 자기 얘기를 꺼려하고 장난처럼 대하며 어색해하던 학생들에게 내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었다. 자존감 낮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어떻게 정체성을 찾게 되었는지 솔직한 얘기를 꺼내자 점차 진지해졌다. 여럿이 하다 보니 깊은 개개인의 고민까지는 다루지는 못했어도 상호 신뢰와 수용과 지지는 집단 상담의 큰 장점이다.
어려움이 있었다면 피드백이었다. 문제가 발견된 학생들에겐 적절한 피드백이 중요한데 그런 피드백이 전문가가 아니기에 쉽지 않았다. 심각한 상처가 있거나 교우 관계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이 보이면 담당 선생님께 알리는 정도였다. 1시간 동안 6~7명의 아이들과 정해진 프로그램으로 내면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마음 깊숙이 있는 고민과 상처까지 들여다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좀 더 깊이 배우고 싶다는 열망에 청소년 상담사 3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시작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보고 3개월 간 공부해서 시험 보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한 달간 연수원에서 실습까지 마쳤지만 개인 상담 기회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내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고민을 듣고 문제 해결하는 일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경험을 쌓고 깊이 들어가 직접 경험을 해야 한다.
그러기엔 내 에너지와 시간이 부족했다. 강사 일을 하면서 오전에 자원 봉사로 가볍게 시작한 일이라 그런지 시간이 지나면서 상담일이 버겁게 느껴졌다. 일에 대한 성취감과 만족감은 있었지만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다 오후엔 내 본업인 강사 일까지 하며 열심히 달려온 어느 순간 한계를 느끼고 지쳐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 시간의 활동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상담을 다녀온 날 오후에는 일하기가 점점 힘들고 체력에도 한계를 느끼고 상담할수록 어려움도 느끼면서 5년 동안 꾸준히 해오던 상담 자원 봉사를 내려놓는 시점이 왔다.
사람의 마음을 만지고 치유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실감하고 있을 때였다. 요즘 오은영 박사님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바로 사람의 마음을 잘 만지고 치료하고 치유해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상담을 계속 이어갔더라면 어땠을까 가끔 아쉬움이 남지만 후회는 없다. 기회가 된다면 상담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지만 어설프게 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라는 것을 안다. 청소년기에는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을 키우고 정체성을 찾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주변의 관심과 사랑 격려만으로도 충분히 자신감을 찾고 변해갈 수 있다. 거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꿈과 열정. 동기 부여와 원만한 교우 관계가 더해진다면 높은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집단 상담은 짧은 경험이긴 해도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하는 기회가 됐다고 자부하며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