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도 코로나 확산 직전 친구와 둘이 다녀온 하와이 여행은 좋은 기회였다. 2월 대학 동창이자 교사인 친구와 하와이에 사는 친구를 만날 겸 여행을 계획 했다. 그동안 계속 오라고 했지만 여건이 되지 않다가 친구 쌍둥이 아들이 그 해 대학에 합격하면서 한시름 놓고 여유가 생겨 다녀오기로 한 여행이다. 코로나가 막 시작될 즈음이라 고민이 좀 됐지만 교사인 친구라 방학이 아니면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에 강행 했다.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참 많은 여행이었다. 하와이는 비자 발급이 필요한 나라라서 여행을 앞두고 비자 발급을 대행 하거나 개인적으로 신청해야 했다. 캐나다에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던 조카에게 EAST 비자 발급 신청을 부탁했다. 신청이 끝났고 마지막 확인만 하면 된다고 해서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확인한답시고 하고는 컴퓨터를 닫았다. 나중에 화근이 될 줄이야.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일주일 일정으로 짐을 챙기고 친구와 공항에서 만났다. 도착해선 남편 차에서 트렁크만 내리고 작은 짐 가방을 안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다시 되돌아왔지만 왠지 시작부터 불안한 예감이 들었고 예감은 적중했다.
짐을 부치고 수속을 하는데 내 비자 신청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확인 서류까지 보여주었더니 승무원이 전화로 하와이에 확인을 한 결과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다시 비자를 취소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얼마나 황당하던지...
그 때 취소가 되었나 싶었다. 부랴부랴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 얘기를 했더니 막 퇴근하던 조카가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 비자 신청을 해주고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조카에게 최종 확인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내가 번거로울까봐 자기가 확인까지 마쳤는데 그 얘기를 안해줬다며 자기 탓이라고 했다. 1~2시간만 기다리다가 늦어지면 비행기 시간을 바꾸기로 결정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며 무작정 기다렸다.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비행기 시간은 충분해서 일단 대기하면 승무원이 확인되는 대로 전화를 주기로 했다. 마음은 이미 포기한 상태이고 다음 날 가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았다.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인천공항이라는 발신표시가 된 전화가 와서 받자마자 비자 신청이 됐다고 빨리 오라고 했다. 얼마나 기쁘던지...조카와 남편에게 전화로 기쁜 소식을 알리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오면서 좋은 선물을 꼭 사다줘야지 마음먹었다.
자유여행에 익숙해진 젊은이들과 달리 패키지에 길들여진 내가 겪은 아찔한 경험이다.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 혼자서 해외 여행도 못 가서 쩔쩔 매다니. 역시 이것저것 신경쓸 필요가 없는 패키지 여행이 역시 최고이다.
안도하며 탑승을 마치고 12시간을 날아 하와이에 도착했다. 괸광객들이 어찌나 많던지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수속도 더디고 사람도 많고 시간이 오래 걸려 겨우 나왔지만 친구가 오지 않았다. 금방 만나겠지 하고 혼자 짐을 찾고 기다리고 있는데도 한참을 오지 않는 친구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우리 가방만 남았을 때까지 기다리다 지쳐서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친구만 로밍을 해서 연락할 길도 없고 답답하기만 했다. 마중 나와 있기로 한 하와이 친구한테도 연락할 길이 없어 한국인 관광객에게 부탁해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괜찮으니 천천히 나오라고 했다.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친구가 보였다. 몇 년 만의 상봉인 것처럼 반가웠다. 친구는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입국 심사에 걸려서 안에까지 들어갔다고 했다. 관광으로 왔는데 호텔이 아닌 친구 집 주소로 쓴 것을 이상하다고 여기고 들어가서는 직업이 뭔지 왜 왔는지 꼬치꼬치 물었다고 했다. 잘 못 하는 영어로 겨우 설명하면서 진땀을 뺐다며 뭐 이런 일이 다 있냐고 헛웃음을 쳤다.
그래도 교사이고 예전에 아이들 데리고 싱가포르나 터키 자유여행을 한 적도 있는 친구여서 설명할 수 있었지 영어울렁증이 있는 나였다면 아마 진땀을 빼고 한국 통역사 불러달라고 했을 것이다. 시작부터 불길하더니 도착해서도 이런 어려움까지 겪다니 자유 여행 진짜 힘드네. 에휴
늦게 나온 우리들을 만나자마자 친구는 고생했다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12시간을 타고 오면서 얘기하느라 잠도 못 잔데다가 올 때부터 시작된 마음 고생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는지 초췌해진 우리들을 보곤 막 웃었다.
피곤에 지친 우릴 보고 빨리 가서 짐부터 풀고 좀 쉬라며 숙소에 데려다주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피로를 풀며 간만에 만난 터라 나눌 얘기가 많았다.
친구 명의로 된 콘도여서 우리 둘이 지내고 일정에 맞춰 픽업하며 데리러 오기로 했다. 친구는 생업이 있으니 하루 이틀 정도는 우리끼리 일정을 짰다.
저녁 때 친구가 다시 데리러 오면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하고 그 사이 우린 좀 쉬었겠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호놀룰루의 상징인 와이키키 해변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이 곳은 아직 코로나 발생이 한 명도 없어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30~40명 코로나 발생 소식이 들렸을 때였는데 그것도 걱정 되어 가야 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으니. 그 후 전 세계에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난 걸 생각하면...
대학 졸업하자마자 하와이로 이민을 왔던 친구였다. 남편과 하와이에서의 이민 생활은 처음엔 녹록치 않았다.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해오다가 최근에 한국식 치킨 가게를 오픈해 직영점까지 운영하면서 자리를 잡아 이민 생활이 한층 여유로워졌다. 취업을 한 아들과 대학생 딸과 단란한 네 식구의 하와이 생활은 벌써 3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 사이에 한국에 나올 때마다 만나긴 했어도 우리가 하와이에 온 건 처음이었으니 30년만에 하와이에서 모인 절친들과의 여행이 설레이는 건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