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5년 전 일이다. 수능 시기만 되면 학력 고사 때 어이없던 내 실수가 떠오를 때면 헛웃음을 짓는다. 실수할 게 따로 있지 어떻게 그런 실수를 했을까.
난 학력고사 세대이다. 그것도 선지원 후시험이란 제도로 바뀌고 처음 실시된 시험이었다. 전기에서 떨어진 학생은 후기 지원이란 제도가 있었다.
학력고사 뿐 아니라 내 청소년기 땐 변화가 급격히 많았다. 교복 자율화가 시행 되면서 중1 때를 제외하곤 사복을 입고 학교 다닌 세대였다. 편하고 자유로웠다. 중1 때는 예전 선배들이 입던 흰 카라에 검은 치마 교복과 새로 맞춘 체크 브라우스를 선택해서 입는 자율 교복이었다. 언니가 둘이나 있던 난 교복을 따로 맞추지 않고 물려입었지만 대부분 친구들은 체크 브라우스의 맞춤 교복을 입어서 좀 부러웠다. 1년만 입으면 되니깐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중 2 때부터 사복에 가방에 머리에 모두 자율화가 되면서 나이키. 프로스펙스. 아식스 등 명품 운동화가 유행했고 옷을 사러 가까운 신촌을 열심히 드나들었던 기억도 난다. 언니들이 많은 덕에 옷을 잡 입은 축에 들었지만 보이지 않는 간극도 있었고 기죽지 않으려는 경쟁도 있었던 것 같다. 자율화의 단점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자율화였다가 졸업하고 몇 년 뒤 다시 교복 시대가 도래했던 그야말로 과도기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선지원 후시험 제도로 바뀌면서 대학을 먼저 선택하고 그 대학에 원서도 직접 접수하고
시험도 직접 보러갔다. 처음 지원한 학교에서 떨어지면 후기 학교에 지원하는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 처음 바뀐 제도에 다들 당황스러워 자기 실력보다 안정된 대학에 원서를 썼다.
시험이 끝나고 발표 날짜가 왔을 때 합격 여부를 대학에 전화해서 수험번호를 눌러 합격. 불합격을 확인했다. 전화가 폭주하다보니 한참 만에 연결되고 내 수험번호를 누르자 불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절망했다. 경쟁률이 5대1이었는데 떨어진 것이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혼자 있을 때 확인해서 아무도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 재수는 엄두도 못 내겠고 허락도 안해주실 것 같았다. 후기를 넣어봐야 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도 안 들고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했다.
한참을 머리를 싸매고 누워있다가 일어나선 책을 정리했다. 그 때 책 사이에 끼어있던 수험표가 눈에 띄었다. 수험표를 꺼내자 갑자기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뿔싸!' 뒷자리 하나를 잘못 누른 것이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역시 한참만에 연결이 됐다. 다시 확인한 번호를 누르자 합격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두 배로 기뻤다. 맘 고생한 만큼 기쁨도 배가 되어 돌아왔다. 반대로 불합격이었다면 절망 역시 두배로 느꼈을 테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의 어이없는 행동에 실수할게 따로 있지 그런 중요한 걸 잊냐며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그래도 그 마음은 둥실둥실 구름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88 꿈나무 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던 추억과 그 때의 실수가 가끔씩 웃픈 기억으로 생생히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