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다식한 남편

by oj

남편은 나와 맞는 게 별로 없다. 성격이 둘 다 온순한 편이라는 것 외에 좋아하는 음식도 색깔도 Tv프로도 취향도 참 다르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뭐든 마음 먹은 일을 빨리 해놓거나 결정을 해놔야 마음 편하다. 자매들이나 나를 아는 친구들에게 내 별명은 LTE 이다. 예전엔 차분했는데 점점 급해진 성격은 생각날 때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과 미리 해두면 신경 쓰이지 않는 편안함과 눈에 보이고 바로 해야 잊지 않는 나이들면서 생긴 변화 등 복합적이다. 반면 남편은 느긋하고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우리 부부를 잘 아는 사람들은보 내 안엔 남자 있고 남편 안엔 여자 있다고들 말한다. 내가 봐도 그렇다.

남편의 장점은 다방면에서 나타난다. 먼저 상식이 아주 많다. 박학다식해서 마음먹고 공부를 했더라면 서울대도 갔을 거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 난 똑똑한데 공부를 안 했네라고 맞받아친다. 느닷없이 "어이가 없네"란 말의 어원을 묻는다던지 사면초가란 고사성어의 유래 등을 묻는다. 질문을 즐겨 하는 남편 덕에 생각이란 걸 자주 한다. 퀴즈 프로를 즐겨보면서 왠만한 상식 문제는 거의 맞추는 남편의 머리속이 가끔씩 궁금하다.

최근엔 TV 예능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연예인이 종로에서 재료를 사와 홀로그램을 만든 걸 보고 바로 집에 있는 얇은 플라스틱 표지를 잘라서 사각뿔을 만들었다. 유튜브 영상을 켜서 그 위에 올려놓으니 음악과 함께 네 면에 영상이 홀로그램처럼 보여 너무 신기했다. 아들들도 그런 아빠의 호기심 천국을 인정한다.

난 뭐든 듣고도 금방 또 잊는다. 그 많은 상식을 기억하고 뭐든 호기심 갖고 해보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길가에서 자라고 있는 이름모를 들꽃부터 나무들의 이름과 특징까지 대부분 알고 있으니...

그렇다고 상식 없는 나를 무시하지 않고 자세히 설명해주는 걸 좋아한다. 마치 손주에게 할아버지가 설명하듯 조근조근 말이다. 가끔 너무 장황해서 들으면서 딴 생각을 하며 고개만 끄덕거릴 때가 있지만 남편의 상식을 존경한다. 대신 내가 남편보다 더 많이 아는 건 역사이다. 역사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남편 보란듯이 신나서 정신없이 떠든다.

그런 남편은 알뜰신잡과 옥탑방의 문제아들. 벌거벗은 세계사. 톡파원 등의 프로를 좋아한다. 코로나로 여행이 닫혔을 때 톡파원들의 여행을 보며 대리 만족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은 여행 가고 싶다는 표현을 "아. 기내식 먹고 싶다" 라고 표현한다. 결혼 30주년 기념 여행으로 3월에 이태리를 다녀왔으니 당분간 그 말은 들어가겠지.

손재주는 또 어떤지. 전등은 기본이고 수전도 갈고 도배도 직접 하고 비데도 설치한다. 뭐든 문제가 있는 것들을 고치고 불편함을 해소한다. 옷장의 선반이 부족하면 선반을 달아주고 집안에 있는 옷걸이 등 잡다한 물건으로 뭔가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런 남편을 잔머리의 대가라고 말하 순발력이라고 답한다. 꼼꼼하고 손재주가 많은 어머님을 똑 닮았다. 남자들은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전등을 직접 갈아끼운다는 친구들도 있고 손재주가 없는 남편이 답답하다며 투덜거리는 지인들도 많다. 우리 자매들 집에 문제만 있으면 불평 한마디 없이 정수기나 식기 세척기를 기사분처럼 겨주어 놀라고 고맙게 생각한다.

타고 나는 것도 있지만 노력형 인간이기도 하다. MBTI에선 보나마나 분명 T형일 것이다.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불편하면 바꾸고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 또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원칙을 깨고 마음대로 바꾸거나 중구난방으로 계획성 없이 일하는 걸 아주 싫어해서 융통성 없어 보일 때도 있다.

기계치인 내가 습관처럼 물어보고 부탁하면 요즘은 핸폰 기능이나 컴퓨터 기능. 조립 등도 직접 해보라고 가르친다. 자꾸 해봐야 늘고 배우려 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말이다. 고기는 잡아주는 게 아니고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라며 이제 방법을 바꿨다며 진심 섞인 농담을 했다. 덕분에 혼자 하다보니 터득한 기능들도 많아졌다.

음식 솜씨도 좋은 남편이다. 시간이 좀 많이 걸려서 그렇지 뭐든 하기만 하면 맛있다. 예전엔 회사 다닐 때도 주말에 의례히 실력 발휘를 했는데 퇴사하고 하루 일하고 이틀 쉬는 직장에 재취업 하면서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요리를 즐겨 한다. 형부들이나 지인들은 자기들이 비교 대상이 된다며 불평불만이 많다. 대신 뒷정리와 설거지를 아주 싫어해 그건 내 몫이다. 각자 잘 하는 것을 하면 되고 서로 보완하고 맞춰서 살면 된다.

어머님께도 자상한 아들이다. 집안 일이며 고장난 제품이며 핸드폰 기기 변경이며 인터넷 설치며 은행에 병원까지 딸처럼 세밀하게 챙겨드려 남편을 딸처럼 많이 의지하시고 나에게도 편안하게 대해 주신다.

손재주 많은 남편은 하다하다 이제 뜨게질까지 섭렵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뜨게로 장갑과 양말을 떠준 기억이 나서 치매에 도움이 되게 수세미라도 뜨시라고 뜨게실과 바늘을 주문했다. 그걸 보고는 유튜브를 찾아보고 바로 수세미를 떴다. 재밌고 시간이 금방 간다면서 다른 실을 주문하더니 유튜브를 보고 자기만의 응용이 더해지면서 핸드폰 가방에 호보가방에 벌써 몇 개나 떠주었다. 어머님. 처형들. 지인들 핸드폰 가방까지...

나중에는 팔목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그만 했는데 재주가 참 뛰어나다. 뜨게를 전문적으로 하는 친구가 내 가방을 보더니 거의 전문가 실력이라면서 놀라면서 손재주를 칭찬했다. 오래간만에 거북이 키링을 떠줘서 내 키링을 바꾸고 친구에겐 부부 킬링을 떠주어서 선물했더니 아주 좋아했다.

정확하고 정교하고 꼼꼼하고 빈틈없는 사람이다. 예전엔 달라도 너무 다른 남편이 답답했다. 남편의 그런 꼼꼼함과 완벽함이 숨막히고 부딪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계획형인 꼼꼼한 남편과 털털하고 덜렁대는 내가 처음엔 정말 안 맞았다.

신혼 여행 가서 여행 가방 싼 일로 싸우고 온 일은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첫 부부 싸움을 신혼 여행에서 하게 될 줄이야...돌아가기 전 날 내가 다 싸놓은 캐리어의 짐을 다시 싸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하면 많이 넣을 수 없다며 다시 정리하는 걸 보고 애취급 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지금은 성향을 아니까 캐리어에 가져갈 짐을 다 꺼내놓기만 하면 알아서 정리한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며 맞춰가며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벌써 30년이 되다보니 이젠 싸울 일도 없다. 이렇게 장점 많고 한결 같아 두 아이들도 같이 잘 키워냈고 같은 취미도 갖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원만한 가정으로 편안하게 살아오게 해준 남편에게 항상 고맙다. 감정 표현이 서투른 남편은 내게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도 잘 못하지만 그 마음을 다 이해한다. 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인생은 잃어버린것들의 목록이란 영화속 대사를 듣고 우리의 잃어버린 젊음. 잃어버린 소녀감성. 잃어버린 꿈. 잃어버린 사랑. 잃어버린 부모님 등 많은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인생은 무엇가 새로운 경험과 희망으로 가득 채우는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잃어버린 것들로 가득하다. 사랑해서 만나 결혼한 부부도 서로 맞지 않아 동상이몽 부부로 살거나 황혼 이혼, 졸혼. 쇼윈도우 부부처럼 처음 사랑을 잃고 추억도 잃고 산다. 뜨겁고 설레이던 그런 사랑은 이제 남지 않아도 조금씩 맞춰가고 채우며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걸어가기를 바란다. 늙어가면서 예전의 젊음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여기저기 아플 때 의지하는 사람도 자녀들이 부모 둥지를 떠났을 때 곁을 지켜주는 사람도 함께 살아가는 부부이다. 잃어버린 것들만 붙들지 말고 맞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보듬어주고 채워주는 부부로 살다보면 어느 새 깊어진 사랑과 연민의 때가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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