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놀기만 하면 됐다. 학교 갔다오면 숙제가 걸림돌이긴 했지만 일단 가방 던져놓고 나가기만 하면 놀거리투성이였다.
학창 시절 땐 공부만 하면 됐다. 늘어나는 학업량에 힘들 때면 친구들과 떡볶이만 사먹으면서 재잘거리고 수다만 떨어도 좋았을 때다.
삶의 이유 같은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면서 조금씩 내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일단 졸업해서 취업이란 관문만 통과하면 될 거라고 여겼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주어진 업무만 실수없이 잘 하면 됐다. 반복되는 일상이 무료할 때면 머리를 식히러 영화를 보고 한강 공원을 찾고 퇴근 후 가끔 취미 생활 하나쯤 누리면 만족했다. 대학 때부터 사귀어 결혼할 사람과 퇴근 후 만나서 데이트 하고 집으로 오는 것만으로 행복하던 때였다.
내 삶의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한 건 결혼 한 이후부터였다. 처음엔 결혼 하면 힘들었던 사회 생활에서 벗어나 큰 고민 없이 살게 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삶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였다. 혼자가 아닌 둘이 되고 시댁이란 낯선 식구들의 일원이 되고 내가 원하던 삶을 잘 살고 있는 건지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이 방법 저 방법 삶의 이유를 찾았다.
결혼해서 신혼때는 행복한 가정이 내삶의 이유였다. 남편은 30세. 난 25세. 대학 때부터 교회 오빠로 만나 사회 생활 2년 하며 결혼 자금을 모아 4년 만에 결혼했다. 부모를 떠나 둘이 만들어갈 가정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함께 있고 싶어 결혼한 만큼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며 행복을 꿈꿨다. 하지만 결혼하고 2년을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쉽지 않은 신혼을 보냈다. 시동생에 형님이 출산 후 몸조리에 양육까지 시댁에서 하면서 그야말로 대식구에 치여 내 삶의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형님이 계셔 커피 한 잔 마시며 어려운 시댁살이에서 그나마 마음 붙일 데가 있었고 형님의 고충도 알았다. 아파트 입주 직전까지 시부모님과 남편을 포함한 시동생 둘까지 형님네서 함께 몇 년을 지냈다. 형님은 말없이 순응하셨지만 나는 달랐다.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누리진 못하더라도 내가 원한 삶은 이게 아니었다. 회사에 출근한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바라며 대식구를 감당해야 하는 나로선 탈출구가 필요했다. 결혼 3개월 만에 일하기로 마음 먹고 집 근처 속셈 학원 강사일을 얻었다. 오후에만 일하면 되니 시간도 적당하고 일하는 며느리 고생한다며 걱정해주는 시부모님도 일도 모두 만족했다. 임신으로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출산 일주일 전까지 일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키울 때는 부모로서 역할이 내삶의 이유였다. 허니문 베이비로 태어나 26세에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나로선 처음 해보는 육아가 어려웠지만 서툰 사랑은 이미 시작했다. 큰 아들 육아에 익숙해질 때쯤 3년 차로 둘째 아들이 태어나 둘이 시작한 가족은 넷이 되었다. 너무 사랑스러웠고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많이 표현해주며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썼다. 27개월 어린 아이가 맹장에 복막염까지 진행 되어 급박하게 수술할 때는 애간장을 다 녹이며 진정한 부모가 됐다.
아들치곤 순둥순둥 하고 사춘기 때도 크게 속 끓이지 않고 잘 자라주어 사회에 나가 자리매김한 아들들이 대견할 뿐이다. 그렇게 키운 아들들이 벌써 사회로 진출해 내 옆을 든든히 지켜주면서 내년과 후년에 함께 하고 싶은 반려자를 만나 결혼 한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