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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캡의 샘물

ㅡ공평하게 주어지는 삶ㅡ

by oj



사람들은 모두 영원한 생명을 원한다. 수명 연장을 위해 연구와 개발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며 생명 기술은 더 크게 발달했다. 왠만한 질병도 쉽게 고치는 시대가 되어 100세 시대가 되고 있다.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 과연 행복인지 물음표를 던진 책이 <트리캡의 샘물> 이다.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주어진 인생을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면서 후회없이 살다가 책임을 다 하고나면 평온하게 떠나는 것이 이치이다.

살면서 꿈을 찾고 이루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스스로 행복을 찾는 가치 있는 삶에 목표를 둔다. 그 과정에서 공공의 이익과 사회에 대한 기여까지 더해진다면 좋지 않을까. 꿈도 꿔보지 못하고 열정도 없이 하릴없이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


이 책에는 터크 가족이 불멸의 존재로 등장한다. 우연히 그 가족을 만나게 된 주인공 위니는 트리캡의 샘물을 마시고 영원히 살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비밀을 안 위니를 그냥 보낼 수 없어 함께 살게 되면서 가까워진다.


터크 가족은 삶을 대하는 방식이 모두 달랐다. 아버지 터크는 자신을 '돌과 같은 존재' 로 인식하며 변화 없는 삶을 무가치하다고 여겨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반면 엄마 매는 원치 않아도 어차피 주어진 삶이니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주어진 일을 감당한다.

형 마일스와 동생 제시는 다양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마일스는 봉사를 하는 등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을 하고 제시는 여기저기 여행하며 모험을 즐기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만약 나에게 영원한 삶이 주어진다면 아마도 제시처럼 살지 않을까. 보통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살기엔 제한적이고 한계가 따르고 시간도 부족하고 두렵고 걸림돌이 많다. 이런 제한없는 무한한 삶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지 가서 많은 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경험들을 즐길 것이다.


터크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은 위니 가족에게 접근해 사라진 딸을 찾아주겠다며 숲을 팔 것을 요구한다. 샘물이 있는 숲을 차지해 큰 돈을 벌 계획을 갖고 터크 가족을 유괴범으로 몰아 경찰과 함께 위니를 찾으러 간다. 그 곳에서 엄마 매는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터크 가족의 비밀을 알고 그의 계획이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두려움에 그를 죽이고 감옥에 갇힌다.


사형을 선고받은 매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과 샘물의 정체가 탄로났을 때 올 상황을 생각하자 위니는 용기를 낸다. 가족이 창문을 뜯어 매를 탈출시키고 대신 위니가 감옥에 들어간다. 살인은 범죄이고 윤리에 가장 어긋나는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지만 그 상황에선 비밀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전쟁중에 살기 위해 생명을 헤치는 건 살인으로 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그 사실이 알려지면 수많은 사람들이 샘물을 마시려고 다투고 탐욕스러운 사람들 손에 들어가서 정치적. 경제적 이익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예전에 재밌게 본 영화 <인니아나존스> 에서도 다루었던 소재였다.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수를 찾기 위한 모험이 스릴 있게 전개 되었고 욕망과 탐욕의 인간들은 화를 자초한다는 내용이었다. 인간은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그 후 제시가 위니에게 샘물을 마시고 같이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남기로 하고 샘물을 남기고 떠났어도 위니는 그 샘물을 마시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 숲과 샘물은 재해로 사라져버렸고 열심히 살다가 생을 마친 위니의 무덤을 보게 된다. 위니는 영원한 생명 대신 자신의 선택과 노력으로 주어진 일을 하며 유한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어쩌면 샘물 앞에서 조금도 갈등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불로초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내몬 중국의 진시황이나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샘물을 차지하려 한 노란 옷을 입은 사람처럼 인간의 과욕은 화를 부를 뿐이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도 없는 것이 유한한 생명이며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다.


자연의 순리와 이치에 따라 얼마나 길게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치중하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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