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결혼식을 마치고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준비한 인륜지대사를 잘 끝내 숙제를 잘 마친 기분에 흐뭇하고 대견할 뿐이다.
어느 새 커서 부모를 떠나 독립된 가정을 만들어간다니 감격스럽고 감사하며 복잡 미묘한 마음이다.
30년 전에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가던 날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당시 언니들. 친구들은 대부분 제주도로 신혼 여행을 갔고 잘 다녀와야 발리나 괌 정도였는데 하와이로 가게 되어서 마음이 설레고 기대가 컸다.
마침 광화문 회사 빌딩 내에 여행사가 있었고 하와이에 친구도 살고 있어 자유 시간이 주어지면 만나기로 해서 좀 무리가 되었지만 강행을 했다. 근처 미대사관에서 비자 발급도 쉽게 받고 페키지로 예약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기다렸다.
예식이 끝나고 인사를 드리고 남편 친구가 준비한 웨딩카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아뿔싸. 여행사에서 20쌍의 신혼부부 좌석을 예약하다 보니 자리가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가이드가 이리저리 다니면서 좌석 조율을 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맞추었지만 우린 예외였다. 남편은 창가 쪽 두 자리에 나는 가운데 좌석 끝자리에 앉게 되어 남편 옆 좌석 어르신께 가이드가 정중히 양해를 구했지만 요지부동이셨다. 그냥 조용히 가게 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더 이상 말도 못 붙이게 했다. 어쩔 수 없이 떨어져 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10시간 이상을 따로 갈 생각을 하니 난감했다. 첫 해외 여행에 심지어 신혼여행인데 이런 일이 생겼나 싶어 슬그머니 화도 났다.
장거리 비행이니 가면서 할 얘기도 많고 지루할 틈도 없을 줄 알았는데 신혼여행 출발부터 기분이 언짢았다. 남편은 눈짓을 하며 기다려 보라고 했다. 비행기가 출발하고 잠시 후에 기내식이 제공 되었다. 부드러운 스테이크에 와인까지 너무 훌륭한 기내식이었다. 혼자 쓸쓸이 식사를 하는데 옆에서 남편이 어르신을 열심히 챙겨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인 한 잔 하시겠냐고 따라드리고 과일도 드시라고 먼저 드리며 식사 하면서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가 났다. 식사가 끝나자 음료도 먼저 여쭈어보고는 스튜어디스께 친절히 권해드렸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식사가 끝나고 화장실에 다녀오신 어르신께 사실은 신혼여행 가는 중이고 와이프라며 나를 인사 시키고는 자리 양보를 정중히 부탁했다. 그러자 그러냐고 웃으시면서 흔쾌히 자리를 바꾸어 주시면서 즐거운 여행 되라고 덕담까지 해주셨다. 감사하다며 연신 인사 드리고 남은 시간은 즐겁게 함께 갈 수 있었다.
남편에게 감격한 순간이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반하고 너무 믿음직스러웠다. 부드러움은 단단함을 이긴다더니 정말 그랬고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더니 정말 그랬다. 둘이 앉아 손을 잡고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그제서야 결혼한 것이 실감났다. 낮에 있던 긴장감도 피곤함도 모두 몰려간 것처럼 행복을 만끽한 순간이었다.
그런 남편과의 30년 시간이 어느 새 이렇게 빨리 흘렀나 싶고 30년 전이지만 새로운 첫 출발의 첫 신혼 여행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아들이 우리가 갔던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난다니 일촌광음의 시간이 놀랍고 감회가 새로울 뿐이다.
하와이에 사는 친구가 공항에서 하와이안 목걸이를 걸어준다고 기다린다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