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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을 축복한다

by oj


연극이 끝난 후에 정적만이 남아있고 고독만이 흐르고 있다는 노랫말처럼 예식을 끝내고 나니 시끌벅적하면서 인사 받느라 바쁘고 정신없다가 긴장이 풀린 탓인지 공허함이 밀려오고 피곤했는지 몸이 안 좋다.


신혼부부 여행을 보낸 뒤에 일부러 이틀 동안 아무런 일정을 잡지 않고 푹 쉬려고 했다. 월욜 아침 다리는 뻐근하고 화욜에는 약간의 어지럼증이 시작됐다. 가끔 천장이 뱅글뱅글 도는 이석증 증상이 있었는데 그 증상인가 싶어 병원에 갔다.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고 이틀 정도 먹으면 보통은 낫는데 아직까지 가라앉지 않았다.


긴장을 안 한다고는 했지만 이래저래 신경을 쓰고 예식을 끝내니 몸이 무리가 된 것 같다. 예식 일주일 전에 신혼 살림이 들어가고 이사짐이 들어가면서 정리해주고 오느라 힘이 들었던 것 외에는 힘든 일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그게 아니었고 보통 일은 아니었나 보다.


결혼 예식이 토요일 오후 3시여서 아침 시간 한가하게 준비하고 12시에 가서 머리랑 화장하고 2시부터 가족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며느리와 나비 넥타이를 맨 아들의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렸고 눈부시게 빛이 났다. 신부 대기실에서 촬영할 때 며느리 손을 만지니 긴장한 탓인지. 그 날 날씨가 추웠던 탓인지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 예식장안에서도 가족 선촬영을 먼저 하고 진행 맞춰 보니 어느덧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함께 30분 인사 받느라 정신 없었고 간만에 만난 친척들. 지인들이 반가웠다. 멀리서 발걸음을 해주신 분들께 특별히 더 감사했다.


예식이 시작되자 요즘 추세대로 두 아버님 입장을 먼저 해서 인사드리고 우리가 입장해 화촉을 밝히고 인사를 드렸다. 박수를 받으며 신랑이 입장하고 아버님과 함께 신부가 나란히 입장해 인사했다. 간단한 주례사와 성혼문을 낭독하고 축시를 읽을 차례가 되었다.


예배식으로 진행해서 순서지에 축시를 써서 올려달라고 했더니 읽는 게 좋다고 하셔서 용기를 냈다. 떨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새 출발 하는 아들 부부를 축복하는 시를 읽으니 용기 내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 좋은 시간이었다고 인사를 건네고 아들 부부도 너무 의미 있었다고 했다.

축가는 청년부의 두 청년이 듀엣으로 폴김의 "모든 날. 모든 순간" 이란 노래를 감미로운 목소리로 불러 모든 순간이 감격스러웠다. 마지막 행진 빵빠레와 꽃잎 이벤트도 너무 감동이었다.


아들도 며느리도 나이가 젊다보니 친구들 중 첫 결혼이라 그런지 친구들이 엄청 많이 왔다. 친지들 사진도. 친구들 사진도 많은 사람들로 빼곡하게 둘러쌓인 것을 보니 너무 보기 좋으면서 뭉클했다. 우리가 잘 살았나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다. 예단. 이바지 음식과 함께 폐백도 생략해서 간소화 하기로 해 폐백을 안하니 예식이 금방 끝난 것 같았다.


식당으로 가서 교회 식구들. 친인척분들. 친구. 지인들. 남편 옛 회사 동료와 현 회사 동료들께 인사를 드렸다. 아들 회사 동료와 친구들까지 북적북적거렸다. 예상 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셔서 축하해주어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예식이 끝나고 집에 오니 6시였다. 기진맥진했다.


안사돈의 키가 170cm이 넘으셔서 내가 9cm나 되는 키 큰 신발을 신어서 발이 너무 아팠다. 정신 없을 때는 몰랐는데 집에 오니 발과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파스를 붙이고 일찍 자려고 했지만 오신 분들께 인사 메세지를 전하느라 늦게까지 있다보니 너무 피곤한데도 잠이 안 왔다.


어느 새 자라서 이제 우리의 품을 떠나 독립된 가정을 만드나 싶기도 했고 내년 봄이면 큰아들 결혼 예식 준비도 반복되겠구나 싶어 복잡한 심경까지 몰려와서 깊은 잠을 못 들었다.


다음 날 예배 때 인절미 떡을 맞춰 식사 때 인사를 전하고 청년부에겐 빵과 음료를 보냈다. 여기저기 인사드리고 주일 날도 바쁘게 보내고 월. 화는 푹 쉬어야지 했는데 이석증이 찾아온 것이다. 머리가 계속 어질어질하고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일어날 때마다 몸이 무거웠다.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고 간김에 영양제도 맞았다.


집에 와서 약을 먹어 그런지 종일 잠만 왔다.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오후 4.5시면 잠이 들어 새벽에 일어났다가 또 자도 잠이 왔다. 벌써 3일째인데 이제야 조금 피곤이 풀린 듯하다.


예식이 끝나니 분주했던 마음이 가라앉아 홀가분해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신혼집으로 들어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둘이 헤쳐나가며 새롭게 출발할 아들 부부의 앞날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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