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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데이

by oj


큰 아들은 회사가 용인이여서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일주일이나 가끔은 이주일 만에 온다. 결혼식 때 다녀가서 지난 주는 오지 않고 어제 2주 만에 만났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 선물!"

이라며 화이트 데이 사탕을 건넸다.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레몬 사탕이었다. 그것도 노란색 레몬만이 아닌 분홍색 오렌지 맛이 섞인 보기에도 예쁜 사탕이었다.


안 그래도 매주마다 오던 작은 아들이 이제 안 온다고 생각하니 헛헛하던 차에 아들의 사탕 선물에 함박웃음과 함께 마음까지 밝아졌다.


결혼한 작은 아들이 하와이 신혼여행 마치고 돌아와서 이튿 날 집에 왔다가 신혼집으로 갔다. 친정에서 하루 자고 할머니께 인사 드리고 같이 저녁 먹고 집에 와서 하루 저녁 잔다길래 저녁 때 과일 먹으며 신혼여행 사진도 보면서 두런두런 얘기 나누니 새식구 들어온 기분이 실감났다. 다음 날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둔 소갈비에 아침을 같이 먹고 밑반찬에 김치. 양념 등 한아름 챙겨주고 남은 짐까지 다 보내고 나니 진짜 장가 보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그런 엄마 맘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사탕을 주는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엄마 선물도 살 줄 아네. 여자 친구가 생기니 달라졌어."

"이제 철 들고 어른이 된 거죠!"

하며 싱글거리는 아들의 볼을 만지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큰 아들이 연애를 하면서 진짜 많이 달라졌다. 자긴 상남자라며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 고백하는 대사를 보면 오글거린다며 자긴 절대 저렇게 할 수 없을 거라던 아들이 여자친구와 전화하는 걸 들어보면 오글거림 자체이다. 꽁냥꽁냥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만나고 들어와도 한 시간씩 전화를 붙들고 산다.


그 모습을 보며 혼자 베시시 웃는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츤데레처럼 무뚝뚝하지만 속 깊은 아들은 진짜 표현을 못 했다. 어버이날 쓴 손 편지에도 간단한 형식적인 말 한 마디에 카네이션 살 줄도 모르던 아들이어서 매번 서운함을 안겨준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애교가 철철 넘친다.


지난 번 제주 여행 갔을 때도 나랑 걸으면서 손도 잡고 팔짱도 끼고 어깨도 안아주길래 웃으며 쳐다봤더니 습관이 되어서 그렇다며 멋쩍게 웃었다. 사랑을 하니 달라져서 참 좋아보인다. 긍정적인 변화이다.


작은 아들이 결혼을 먼저 한다고 했을 때 큰 아들 먼저 시키고 싶은 마음이 사실 있었다. 자긴 이제 1년 지나서 내년쯤 하고 싶다며 동생 먼저 보내라며 쿨하게 말해준 아들이었다. 어머님은 장남을 먼저 보내야지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셨지만 큰 손자도 결혼할 여자 친구가 있는 걸 아시고는 허락하셨다.


반대하신다고 안 시킬 결혼은 아니었지만 어머님 입장에선 큰 손자가 여자 친구도 없이 결혼하는 동생을 보는 마음이 얼마나 짠하겠냐며 마음을 헤아리시고 여자 친구가 있다니 다행이라며 안도하신 것이다.


내년 봄이면 큰 아들도 결혼 예정이라 1년 차로 바로 결혼을 하게 되면 너무 허전할 것 같긴 하다. 주말이나마 북적거린 즐거움마저 이제 누리지 못 하겠구나 싶어서. 가정을 이루게 될 아들이 대견하고 새 식구를 맞으니 기분이 색다르긴 하지만 자주 볼 수 없으니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나마 아들들이 일찍 독립해서 익숙해진 데다가 일도 취미도 자매들도 가까이 있고 두 어머님 챙기고 친구에 지인도 많고 교회 생활에 늘 바쁘게 지내는 나이다. 두 아들을 해바라기만 하진 않아서 외로울 틈이 없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허전한데 매일 같이 지내던 자식들 분가시킨 사람들은 더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커서 독립하는 건 당연하다. 오히려 만혼이 되었는데도 비혼주의 선언으로 걱정이 한가득인 사람이 많다. 때가 되면 독립하고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며 사는 자식들에게 감사하고 연애를 하며 엄마 마음까지 헤아려주는 고마운 아들 덕분에 기분 좋은 아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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