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의 기상

by oj

고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행주산성에서 고양시 백일장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들어가면 바로 권율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세워져 있고 임진왜란 때 승리한 역사적 장소이긴 해도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한 자도 쓸 수가 없었다. 천 년 넘은 시간이 지난 임진왜란을 되새기기에는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철부지 고등학생 시선으로 바라본 그 곳은 소풍 장소 이외에 어떤 의미도 찾을 수가 없었다. 글쓰기를 조금 잘 한다고 뽑혀서 학교 대표로 나간 나로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부담이 졌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고민은 되고 한숨만 쉬다가 장소를 바꿔볼까 하고 산성 제일 꼭대기인 대첩비까지 올라갔다. 그 곳에서 내려다보니 한강 줄기와 곧게 뻗은 도로가 한눈에 보이면서 갑자기 권율 장군의 기상이 떠올랐다. 우리 민족에게 그 날 왜군을 물리친 승전보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쭉 뻗은 한민족의 줄기인 한강을 중심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감사함과 자긍심까지 들었다. 그 날 ‘기상’이란 소재로 시를 썼고 3등이라는 수상을 안겨주었다. 그 시는 지금까지도 내 빛바랜 학창 시절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어느 날 서랍을 정리하다가 꺼내어서 읽어보니 많이 미숙하긴 해도 고등학생이 쓴 시 치고는 괜찮아 보였다. 지금도 행주산성만 가면 여고생 때의 추억과 그 때의 기억라 미소짓게 만든다.


기상


높푸른 창공과

한 민족의 곧은 줄기로 이어진

역사의 고지 위에서

현재를 이룰 수 있었던

순간을 되새겨보는 시간들

남녀노소 귀천의 가림 없이

한 몸 하나로 뭉쳐

치열한 항전에 승전보를 울린

그 용맹과 기세가

줄기를 뻗고 창공을 뚫어

온 누리에 퍼지게 하소서

숭고함과 고귀함의 자태로

우러러 보이는

우뚝 솟은 장군의 기상

고매한 인품과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이 험한 고지에서 자신을 내던진

강인한 의지의 신념을


미래로 뻗어야 할 우리 확신할 수 있기에

장군의 뜻을 가슴속에 되새기며

내 고향 내 고지 위 하늘 아래

목표와 이상을 되새기게 하소서

우리 지역의 명소이자 임진왜란 때 전승한 역사적 장소인 행주산성은 그 역사가 깊다. 임진왜란 때 한산도 대첩. 진주 대첩과 함께 행주 대첩은 3대 전승으로 유명하다. 권율 장군의 지휘 아래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 부녀자들이 한 마음으로 왜구와 맞서 싸워 승리를 이루어 그 기운이 남다른 곳이다. 지금은 덕양정 위쪽에 대첩비각과 행주대첩비가 있고 권율 장군의 사당인 충장사가 있고 그밖에도 충의정. 대첩기념관 등이 잘 조성된 역사 유적지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어린 시절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남쪽으로 피난갔다가 북한군이 서서히 퇴각할 때쯤 가족들과 일산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 때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서 도착한 곳이 행주였다고 했다. 그런 우리 민족 역사 장소가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았고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새해엔 해맞이 행사가 열리고 역사누리길이 조성면서 지역 명소로 자리잡았다.

어릴 때부터 참 많이도 갔던 행주산성은 매년 소풍으로 그것도 걸어서 지겹게 갔던 추억의 장소였다. 여전히 50년 넘게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고향인데다 주변에 맛집과 멋진 카페. 한강 줄기를 따라 조성된 둘레 길까지 어우러져 모임 장소나 산책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아파트에서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과 아침 산책으로 산성 꼭대기에 걸어서 오르면 신선한 공기와 드넓은 하늘. 쭉 뻗은 고속도로에 한강과 방화대교까지 한 눈에 들어와서 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기분좋게 산책을 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 때론 가족들과 브런치를 먹 일상의 장소 다.

올 봄에도 친구들과 행주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한강변을 산책하고 내친김에 산성까지 올라갔다. 마침 벚꽃이 만발해 벚꽃 아래에서 학창 시절 소풍 나온 소녀들처럼 들뜬 기분이었다. 대첩비 아래로는 푸른 숲과 빼곡한 나무 밑으로 곧은 도로가, 위로는 푸르른 창공이, 옆으로는 화사한 벚꽃이 피어있 봄기운과 함께 희망의 기운을 받고 왔다. 봄이면 예쁜 꽃들이 즐비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든 멋진 명소를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그 소중함과 가치를 몰랐다.

우뚝 솟은 권율 장군의 동상은 우리 민족의 정기와 혼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강인한 민족정신까지 느끼는 역사적 유적지가 우리 지역에 있다는 자긍심과 새삼 옛 추억까지 떠오르 만든 기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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