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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Jun 13. 2024

운이 좋게도


수영장 물을 갈아야 된다고 해서 지난 주에 일주일을 휴장했다. 아침 시간이 한가하니 좋았다. 늦게까지 잠을 자고 싶어도 이미 습관이 들어 그게 되진 않지만 침대에서 여유를 부리다가 일어날 수 있으니 편했다.


남편은 퇴근이 겹치는 날은 수영을 못 가기 때문에 이래저래 열흘 이상을 수영을 못갔다. 몸이 찌뿌둥 하다며 자유 수영을 간다고 했다.


마침 내 차가 너무 지저분하고 주유할 때도 돼서 부탁을 했다.

 "오늘은 수영갈 때 내 차 타고 가서 주유와 세차 좀 부탁해요. 난 셀프 주유가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하며 핑계까지 댔다.

 "알았어."

라고 하며 수영을 간 남편이 10분도 안돼서 전화가 왔다.

 "왜요?"

하자

 "지난번 자동차 검사 받았다면서 불합격 받은 줄도 몰랐어?"

하며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어? 그래? 그런 말 못들었는데. 들었으면 다시 받았겠지."

 "검사 기간이 낼모레까지인데 내가 안봤으면 어쩔 뻔 했어? 검사소 어디였는지 전번 찍어 보내."

하며 전화를 뚝 끊었다.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다. 그런 사소한 것도 못 챙기냐고 잔소리할 게 분명했다.

 '그럴 수도 있지. 얼마나 다행이야.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내 마음은 이렇게 긍정 모드가 발동하는데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예전 같았으면 화내는 남편에게 서운하고 삐져서 싸우면 며칠동안 말도 안하고 지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싸울 일이 없어졌다. 왠만한 일로는 화도 안난다. 내성이 생겼다고나 할까.


수영을 하고 온 남편이 자동차 검사소까지 들렸을 텐데도 생각보다 빨리 왔다. 난 화내지 않고 물었다.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갑자기 자동차 연식이 궁금해서 확인하다가 검사통지서를 봤지."

 "그래요? 얼마나 다행이예요. 하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주유와 세차를 부탁하고 갑자기 당신은 그걸 확인해서 얼마나 좋아요? 낼모레를 넘겼다면 벌금이 나왔을 텐데 절묘한 우연의 일치에 감사해야지. 물론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 일단 크지만 몰랐으니까 못 했겠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소리칠 일은 아니잖아요. 운이 좋았네요."

 차분하게 조근조근 말하자

 "그러게. 미안!"

하면서 머쓱해 했다. 브레이크 등이 나가서 불합격 받은 거고 평소 다니는 정비소에 갔더니 그냥 해주셨다고 했다. 내가 보낸 전화번호로 미리 예약해서 금방 검사가 끝나서 온 거라고 했다. 검사비도 물론 안들었다. 손해본 일이 없는데 내가 화내면서 말했다면 사소한 일로 종일 기분이 상했을 게 분명했다.


남편은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이다. 반면 난 덜렁이에 성격까지 급해 실수가 다. 내가 실수하면 남편 눈치를 볼 때가 많다. 완벽한 남편 앞에선 내 실수가 모자람으로 보일까봐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살다보니 내 목소리는 어느새 커졌고 나이가 들수록 남편에게 큰소리 치며 살만한 힘이 생겼다. 실수할 때 뒷치닥거리하는 남편에게

 "둘이 똑같았다면 얼마나 재미없었겠어? 내 덕분에 심심할 틈이 없지?"

 이제 여유를 부리며 농담까지 한다. 그럼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저 웃는다.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고 살면서 조금씩  변한다. 살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고 깜박깜박 잊을 수도 있다. 그게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너그럽게 관용으로 넘어가야 한다. 다그치고 화낸다고 어차피 지난 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잘못도 인정하고 남의 잘못에도 관대하면 좋겠다.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이 얼마나 절묘한 우연의 일치인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선 되돌릴 수 없는 만큼 깊이 고민하지 말고 지금 같은 상황에는 '운이 좋았구나' 생각하면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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