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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07. 2024

라떼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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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란 말을 하면 꼰대 소리를 듣는다. 고리타분하다지만 한여름이 되니 학창시절 때 기억이 떠오르면서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풍요한지 알았으면 한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간 경주 수학여행. 고등학교 때 속초 수학여행은 단체 학생들의 숙박이 가능했던 숙소였다. 지금의 유스호스텔이나 리조트처럼 좋은 시설이 아니었다. 그래도 집을 떠나 처음 친구들과 여행 가는 설레임으로 가득한 수학여행이었다.


교회 수련회는 더 열악했다. 주로 계곡이 있는 곳으로 가면 먼저 텐트를 두 개 치고 거기에서 남녀가 각각 단체로 잠을 잤다. 이불까지 싸갖고 와서 자야 하는 잠자리는 좁고 불편하고 더웠다. 게다가 텐트 주변에 혹여 뱀이 나올까봐 백반을 뿌리기도 하고 한밤중에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물이 텐트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도랑을 파기도 했다. 실제로 새벽에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제대로 잠을 못 잔 일도 있다.


도착하면 남자들은 가장 먼저 수풀 쪽으로 들어가 흙을 파서 간이 화장실을 만들고 천막을 쳤다. 소변이야 할 수 없다지만 다른 볼 일은 보기 싫어 2.3일 동안 꾹 참았던 일이 다반사였다. 가장 불편한 일 중 하나였지만 감수했다. 씻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조를 정해 식사 준비. 뒷정리. 조별 이름. 노래. 미션 수행. 성경 공부. 장기 자랑. 게임. 극기 훈련 등 그 더운 퇴약볕에서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해냈다. 잠시 주어진 계곡에서의 물놀이는 워터파크가 아니어도 제대로 된 물놀이 시설 하나 없어도 즐겁기만 했다.


한 번은 전교인 수련회로 폐교된 학교를 빌려서 간 적이 있었다. 저녁 때 집회가 끝나고 담력 테스트를 한다며 재래식 화장실에 한 번씩 다녀오게 하고 교실 하나를 공포 체험실로 만들어 캄캄한 교실에 몰아넣어 극한의 공포를 느낀 일도 있다. 유난히 겁이 많았던 난 그 체험에서 하도 소리를 지른 데다 누군가 내 다리를 잡을 땐 무서워서 다리가 풀렸던 기억까지 생생하다. 모기는 기본이고 선풍기 하나없이 무더운 수련회여도 좋은 기억으로 가득하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열악한데 좋은 추억으로 남은 건 왜일까. 이런저런 힘들었던 경험은 소심했던 나를 좀 더 적극적이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풍요로움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 풍요로움에 길들여진 아이들을 보면 과연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빈곤과 열악함을 겪은 세대여서 풍요롭고 편안해진 세상에 상대적인 감사를 느끼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풍요는 과연 참고 인내하는 법을 배우며 강하게 버텨낼지 솔직히 걱정이다.


점점 부모 곁에 딱 붙어서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족, 자녀 주위를 돌면서 부모가 중요한 일에 간섭하며 영향력을 미치는 헬리콥터족 등 다양하다. 지혜롭고 일관되며 소신껏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나 자신의 소신대로 사는 젊은이들도 분명히 있지만 아이들 양육보단 SNS에 빠진 젊은 부모 등 우려가 된다.


스스로 선택하며 동기부여를 갖고 새롭게 도전하기 보단 짜여진 부모의 플랜대로 따라가면서 의사결정력이 약해졌다. 우스갯소리로 수강 신청을 부모가 대신 해준다는 말부터 사직서를 부모를 통해 제출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웃픈 현실이다.


물고기를 잡아주기 보단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란 말에 동의한다. 언제까지 부모가 결정하고 간섭할 수는 없다. 안 그래도 온실 속의 화초처럼 부모의 품안에서 걱정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패도 맛보고 힘든 일도 해내며 끈기를 배워야 한다. 평생의 습관과 성격. 인격까지 좌지우지하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환경을 예전 환경과 비교하며 확대 해석이나 비약해선 안 되지만 우리 때  열악한 환경은 의기투합하게 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강하게 만든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은 자기애가 강한 세대가 어른이 되다 보니 희생을 꺼리고 비혼이나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아이들은 잘 키워야 한다. 미래가 달려있다.

라떼 조언도 때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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